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 그 가족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 <왓 데이 해드>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루스(블리드 대너)와 그 과정을 함께 겪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 관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촘코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이야기의 적당한 무게로 영화는 진부하지 않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 루스를 찾아 멀리서 온 비티(힐러리 스웽크) , 가까이서 비상시 달려가는 니키(마이클 섀넌), 심장이 아프지만 한결같이 곁에서 아내 루스를 챙겨주고 싶은 버트(로버트 포스터). <왓 데이 해드>는 늙어간다는 것과 결혼, 사랑 그리고 가족 관계에 대해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엠마(타이사 파미가)를 포함한 서로 다른 세대의 삶에 관한 고민들이 오밀조밀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완벽한 때를 찾아서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네 아빠를 잊었을 테고,
조금 더 빨랐다면 너무 그리워했을 테니까,
지금이 완벽해.
루스는 남편을 생각하며 자신이 그래도 지금 가장 사랑을 표현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느끼기에 적합한 때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죽었지만 - 비록 남편의 장례식에서 조차 아무리 애를 써도 남편을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는 남편을 이야기하며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루스를 보면서 그래도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은 엠마를 향해, 비티는 딸이 성공한 삶을 살기 바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정작 비티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공허함만 커갑니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본 옛 친구와의 만남 때문이었을까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아버지에게 원망도 해 보지만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시간일 뿐입니다. 결혼반지를 빼놓지 못하게 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는 비티의 남편 에디(조쉬 루카스), 서로 교감하지 못하는 결혼생활에서 남편은 그저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사랑이었을지 의무감이었을지 무덤덤한 결혼 생활은 너무나도 괴롭지만, 아픈 엄마를 돌보는 아버지의 말, "사랑은 헌신이야" 이 한마디에 또 마음을 꾹꾹 눌러봅니다. 결혼하고 함께한 긴 세월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말은 진실이니까요.
혹시 기억이 나지 않을 때,
당신과 나잖아,
새로운 곳에 가서 기억이 안 나면 이걸 들여다보면 돼.
절망스럽지만, 버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루스를 보내야 한다는 걸 결국 받아들입니다. 루스와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예전의 사진으로 서로를 기억해 주기 바라는 장면은,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극적인 상황에서 더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아마도 저 밑바닥 가장 깊은 곳에 묻혀있던 그런 감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세상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가도 돌연 세상 그 누구보다 노골적인 적군이 되기도 하는 사람들. 마음 깊이 묵직한 것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하나씩 가라앉아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끝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애증의 관계! 버트가 니키의 가게에서 느끼는 감회가 그랬을 듯합니다.
가족의 관계와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모두 나이를 먹고 늙어가지만 그 방법은 모두 다릅니다. 문득 어떻게 나이를 먹고 늙어가야 할지, 점점 불편해지는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듭니다. 자신만의 시간에서 살아야 할 그 긴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또 삶의 다른 방식이라고 받아들일 용기가 있을까? 그것이 더더욱 치매일 때,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세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무섭고도 막막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내내 따듯한 마음들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내가 보고 싶을 때 가족을 볼 수 없다면,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함께할 그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지금, 더 마음을 쓰고 더 자주 만나고 안부를 물으며 사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곤 합니다. 설사 가끔은 짜증이 조금 섞이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래도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지금이, 루스가 말한 완벽한 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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