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多]

[짧은 생각] 나름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나두매일 2024. 6. 1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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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터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여전히 흰머리가 나면 나는대로 잘 정리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흰머리가 처음 생길 땐 검은 머리에 익숙해서 그런지 왠지 약간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흰머리가 나니 이젠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일단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가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날 문득 굳이?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다보면 노화와 함께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회생활(보통의 직장생활)을 하려면 적당한 가림과 적당한 드러냄이 필요해서 통상적인 차림과 외모를 신경쓰게 됩니다. 처음엔 두피의 간지러움을 참기 힘들어서 염색을 하곤 했지만 새치 이상으로 흰머리의 범위가 넓어지니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염색을 하지 않고 처음 들은 소리,

“그러고 회사 출근을 해? 회사에서 뭐라고 안해?” 안부차 방문한 날 모친의 잔소리가 꽂힙니다.

“??? ...  머리 내마음이지 머!... 그리고 사람들이 내 머리 잘 안봐~”

도낀개낀이라고 했던가요?  저 역시 지지않고 대꾸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나의 시선에 마음 쓰길

 

 

처음엔, 뭔가 잘못된 것처럼 힐끔거리고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뭘 어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회사에서,

“ 왜 염색을 안 하고 그러고 다녀요?” 회의의 막간을 뚫고 뜬금없이 궁금증 같은 질책(상위자가 말하는 건 이렇게 느껴질 경우가 대부분이겠죠?)이 날아옵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먹은 걸 어쩔 수 없습니다.

“?... 염색이 하기 싫어서요.” "..."  너무 정직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뭐라 싫은 소리를 하지도 못합니다.

 

 

사실 전 시력이 굉장히 나쁘고 신장 역시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고질병을 만들지 않으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그걸 굳이 이러쿵저러쿵 변명처럼 말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봐주면 안 되는 건지, 옆 사람에 대한 관심이 외모 말고도 마음 쓸 일들이 많은 텐데 왜 마음은 물어보지 않는 것인지, 상대방 나름의 사정이 있을 법하다는 생각은 왜 해보지 않는 것일까요?

 

 

예전에,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미사를 보던 신부님 생각이 납니다. 젊은 신부님이 하얀 제복에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는데 모두 수군거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도 조금 그렇지만 당시엔 선글라스를 쓴 사람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때였습니다. 진지하게 미사를 보는 당사자 신부님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신도들은 젊은 신부가 멋을 부렸다고, 저렇게 가리고 미사를 보면 안 된다고, 영화에 나오는 조폭 같아서 (하필 머리가 꽤 짧았던...) 보기 안 좋다고... 등등의 이유가 끝없이 나옵니다. 왜 굳이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의 사정과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을까요?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자의던 타의던 - 특히나 한국 사회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무조건, 특히 민감합니다. 또 거꾸로 남들에 대해서 역시 겉모습과 평가에 야박하면서도 빈번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함부로 보고 판단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요!  사실, 보이는 대로... 가 가장 어렵습니다. 말하는 대로,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참 어려운 것들이지만 진심에 가까운 것들을 헤아리고 한번 더 생각하면 함부로 어느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나름의 이유를 안고 살아갑니다. 나만 억울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특별한 이유로 사정을 봐달라 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면 실제로 공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비난을 쉽게 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지만 직접 겪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불행을 만난 것이고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데 설움이 복받칩니다. 이게 우리 인간입니다. 치사하지 않은가요?  가끔 동물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동물들도 최소한의 측은지심은 있습니다. 

 

 

사정이 있겠죠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꼭 물어봐야 하나요?

오늘은 내가 도와줄게요

내일 넘어진 사람을 보면 일으켜주세요

아무도 혼자서는 못살아요

 

- 올드 가드 중, 앤디 상처를  돌봐주던 점원의 말

 

 

 

 

 

2024.05.28-[짧은 생각] 가벼움을 향해 문을 열어두다

 

[짧은 생각] 가벼움을 향해 문을 열어두다

가벼움을 좋아합니다. 단순히 무거움의 반대가 아니라 무거움이 점차 가벼워지는 과정,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번데기를 빠져나온 나풀나풀한 가벼움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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