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연히 바라보게 되는 노부부의 모습들, 말하지 않아도 느린 움직임 속에 서로서로 통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고 같이 늙어간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남편은 은퇴를 하고 집안에 시선을 두고 자꾸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면, 아내는 그동안의 관계가 넓어지면서 시선이 그 너머 밖으로 향해 갑니다.
남편을 잃고 나서 가장 생각날 때가 쓰레기를 버려야 할 순간이었다고 하던 어느 할머니의 회고가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매일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늘 알아서 쓰레기를 처리해 주던 자상한 남편이 일상의 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남편은 아내를 잃고 가장 생각날 때가 외출을 하기 위해 옷을 갖춰 입어야 할 때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양말과 속옷은 물론 구색에 맞춰서 혹은 격식에 맞춰 입어야 하는 순간이면 자신보다 더 살뜰하게 남편을 챙기던 아내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사소한 습관과 행동들에서 기억을 되살리고 작은 것에 아쉬워하고 그리워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런 무심한 날들과 사소한 기억들의 전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생에서 거창하고 다이내믹한 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소소한 추억들
부부가 함께 늙고 함께 생활하는 것만큼 움직이는 시선도 같은 방향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대개 사람의 마음은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회생활의 끝무렵이 되면 남편의 시선은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안정된 울타리 같은 집으로 향하게 되고 아내는 모든 가족에 대한 자신의 보살핌이 끝날 즈음 관심과 시선이 밖을 향하게 됩니다. 젊은 날 자녀를 키우며 경험한 기쁨과 소소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남은 시간을 각자의 방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임무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남편은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고 아내는 집안의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나 세상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시선으로 살아가길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늙은 남편은 식사와 집인일도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하고 늙은 아내도 혼자 움직임에 제한을 두지 말고 간단한 집안일을 두려움 없이 처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 한 사람이 같이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결국은 남은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 모두 각자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방향은 달라도 함께하며 독립적으로
요즘엔 은퇴한 남편들도 아내가 없더라도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사와 요리를 배우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식사는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아내가 곰국솥에 국을 끓이고 있으면 남편은 아내의 신발을 숨겨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정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소소한 정리의 기술이나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하거나 공과금을 처리하는 방법들도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아내는 부득이 전문가가 필요한 일을 제외한 간단한 물건의 수리나 못질하기, 분리수거, 형광등 갈기, 적당히 힘을 써야 하는 집안일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굿 윌 헌팅》에서 숀은 2년 전 아내가 죽었지만 아직도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숀이 월과 죽은 아내의 소소한 버릇들을 추억하며 자신만 알고 있는 아내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을 나누고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윌에게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한데요, 항상 함께 하지만 언젠가 함께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면 그 상실감이 너무도 커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마음과 생활이 무너지고 모든 세상의 의미가 덧없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란 서로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서로의 방향은 달라져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서로 같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함께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3.08.22 - [짧은 생각] 하루에 사용하는 '어휘'가 얼마나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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