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게 된 스위스 영화, 좀 생소하긴 하지만 스위스의 자연과 풍광을 보며 그들의 영화가 궁금했습니다. 음악과 학문 모든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어린 천재의 성장을 그린 내용이라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아서 재능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욕심과 아이의 괴로움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온갖 힘든 과정을 이기고 음악가가 된 <어거스트 러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해가는 어린 주인공의 당돌함과 고민이 더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으면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해
아버지(우르스 유커)와 할아버지(브루노 강쯔)가 일상생활 속에서 발명을 하거나 뭔가 자신의 상상 속 물건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더 나은 보청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실제로 비행을 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끊임없는 노력들이 어린 비투스(테오 게오르규) 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었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생각과 꿈을 꾸기엔 충분했습니다. 비투스를 보면서 아이가 자신의 환경에서 배우고 꿈을 키우며 성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동서 불문하고 부모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아이 자신보다 자신들의 기대에 맞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비극은 시작됩니다. 비투스는 하늘을 날고 싶고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학교 생활은 재미가 없었고, 월반에 월반을 거듭해도 도대체 학교는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부모들은 비투스가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랬고 비투스 또한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어린 비투스는 비행기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괴짜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더 좋아했습니다. 실제로 비투스는 할아버지와 함께일 때가 가장 행복해 보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였습니다.
비투스가 떨어져 뇌를 다쳤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부모들은 비투스의 천재성이 사라질까 걱정합니다. 평범하더라도 건강하게 생활하길 바라기보다 비투스가 뇌를 다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지 못할까 걱정하는 엄마(유리카 옌킨스)의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사고 이후에도 비투스에 대한 기대를 쉽게 저버리지 못하는 부모 나름의 간절함,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고 편히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삶을 살게 된 비투스는 조금 더 행복해 보입니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데, 실제 천재적 재능으로 유명한 테오 게오르그가 비투스의 천재성을 연기했기에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넌 니 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체스 지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라며 비투스는 자신이 뇌를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할아버지에게만 알려줍니다. 둘 만의 비밀을 공유한 채 비투스는 틈틈이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할아버지의 허름한 집에서 지내던 비투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문제 해결을 위해 주식에 투자해 큰 부자가 됩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의 전개이긴 하지만 피아노외 박식한 비투스의 비범함(?)을 보여준 장면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4살 정도의 나이 차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나름의 논리로 자신의 베이비 시터였던 이자벨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깜찍함도 너무 진지해서 미소 짓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것도 모두 '그 존재가 행복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른들에게도 해당합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서 자신의 별을 따라가라는 말, 우린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이 다른 또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 존재할 수 있는 거지
비투스는 정말로 머리가 나빠진 게 아니야.. 너무 똑똑해서 우리 모두를 속인 거지..
그 애를 화나게 하지 마.
너무나도 영리해서 사람들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는 아이는 그에 맞는 방법으로 키워야 하지 않겠니?
피아노 연주와 이국적인 풍경, 자연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여유 안에도 여전히 사람의 욕심은 끝을 모르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영화 안에 녹아 있어 새삼 가족의 무탈함과 일상생활을 건강히 지낼 수 있는 평범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보통 천재를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2022.08.13 - 힘들지만 가족,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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