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의 자서전 《도시의 죽음(Śmierć Miasta)》을 영화한 작품입니다. 슈필만은 1935년 당시 국영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의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 중이었고 그날도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중 독일군의 폭격을 맞습니다. 영화는 독일,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합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각국의 배역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배우가 연기해 실제 당시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좋았던 영화이고, 한국에서는 2015년 재개봉되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슈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은 독일군의 폭격 후 가족과 함께 게토라는 특정구역의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결국 기차를 탄 가족을 잃고 당시 피아니스트로 유명세가 있던 슈필만을 알아본 지인의 도움으로 혼자 겨우 목숨을 유지하게 됩니다. 가족을 죽음으로 보내고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슈필만은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나치의 점령 지역이 넓어지고 전쟁이 확대될수록 자신을 돕던 지인들도 하나둘 잡혀가고 슈필만을 떠나게 됩니다. 도와줄 사람이 사라진 채 혼자 고립된 슈필만은 마지막 은신처가 폭격으로 무너지며 빈집과 무너진 건물을 전전하며 끈질기게 생존을 유지합니다.
나가는 건 쉬워, 나가서 살아남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았지만 황폐하고 몰락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공포와 고독함, 허기와 추위, 지독한 외로움이 쏟아집니다. 그 와중에도 간혹 움직이는 슈필만의 손가락 움직임들, 허공에서 건반 위를 옮겨 오가는 모습에서 피아노를 향한 그의 큰 슬픔과 그래도 놓지 못하는 마지막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내몰리지만 슈필만은 본능에 의지하며 처절하게 견딥니다. 어쩌면 살아남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끊기며 생존의 위협을 받던 중 우연히 폐허에 울려 퍼지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피아노를 연주하던 독일 장교 빌름 호센펠트(토마스 크레취만)를 만납니다. 슈필만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호센펠트는 러시아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여 독일군이 물러나기 전까지 틈틈이 먹을 것을 제공하고 은신처를 보호해 줍니다. 빌름 호센펠트는 인종차별적인 나치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치가 바르샤바에서 철수하는 마지막까지 음식과 옷을 건네던 호센펠트가 전쟁이 끝나고 나중에 슈필만의 음악을 찾아 듣겠다고 약속합니다. 그가 전쟁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호센펠트가 나치 하에서 많은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을 도왔던 공로가 알려지긴 했지만,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의 포로수용소에서 처형당합니다.
피아니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군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을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도 실제 폴란드 유대계 혈동의 배우라 연기를 하면서도 남다른 느낌이었을 듯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브로디의 모습은 예술적인 느낌이 굉장히 강한 것 같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꽤 여러 편이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음악의 선율이 광적인 전쟁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굉장히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알던 감미로운 쇼팽의 야상곡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애절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고 무겁게 마음을 누릅니다. 폭력적이고 학살이 난무하는 전쟁에 감미롭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의 조화가 덧흐르고, 고요하고 묵직하게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의 섬뜩함이 전쟁과 어둠으로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를 잘 표현해줍니다.
<피아니스트>는 영화의 스케일도 굉장한 작품입니다. 거대하고도 광범위한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을 다루면서도 CG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작부터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섬세한 장면들 하나하나, 모두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특히, 전쟁에 의한 폭력과 황폐함, 삭막함이 너무도 사실적이었고 전쟁이 인류에게 준 고통과 전쟁을 일으킨 인류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피아노 연주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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