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앞으로 단 30일 간만 살 수 있다면, 또 그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실제 현실로도 누군가에게 간혹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내 경우가 아닐 뿐이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나머지 삶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순응하기도, 분노하기도, 슬픔에 빠지기도, 반항하기도,... 여러 가지 모습일 겁니다. 나름의 생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사람이던 그렇지 못한 사람이던 현실로 맞닥뜨려지는 그 심정은 모두 같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한부 선고가 곧 삶을 사라지게 하진 않습니다.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아
술, 마약, 여자, 도박, 로데오... 온갖 방탕한 생활을 다하며 지내던 전기 기술자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습니다. 에이즈에 걸려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3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듣습니다. 죽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론은 살 수 있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병원의 처방대로 충실히 치료를 받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30일을 보낸 론, 하지만 치료제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을 나옵니다.
병원에서는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를 임상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에이즈 감염자 레이언(자레드 레토)도 임상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치료제를 투여하고도 사람들은 죽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계속되었습니다. 약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론은 다른 곳으로 약을 구하러 갑니다. 국내에서는 FDA 승인이 나질 않아 금지된 약물이었지만 치료를 위해 약을 수소문합니다. 그리고 30일이 아닌 3개월, 12개월, 그렇게 시간은 흘러갑니다. 물론 론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 약은 내가 처방해
론은 병원에서 알게 된 에이즈 감염자 레이언(자레드 레토)과 함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고, 회원제로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밀수한 치료 약물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비즈니스가 되고 돈도 벌게 되었지만, 그 삶의 절박함을 알기에 론은 자신의 차를 팔고 아픈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금지된 약물을 다른 여러 나라를 통해 밀반입하고 환자들에게 공급합니다.
론에게 시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함 들을 돈벌이로만 이용하는 제약사들과 병원들, 그 사실을 알던 모르던 매 순간을 절박함에 목숨 걸어야 하는 환자들, 현실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론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합니다. 론이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FDA가 오히려 이기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고 재판 후 FDA는 결국 론이 복용하던 약물을 개인 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가했습니다.
론에 맞춰진 매튜 맥커너히의 모든 연기 디테일은 생존을 위한 한 인간의 절박함을 담담히 사실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레이언이 죽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허탈해하던 눈빛과 표정은, 단지 에이즈 환자의 죽음이 아닌 친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인간적인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인상 깊이 남아 있습니다.
2557일째, 론은 그렇게 HIV 진단을 받은 지 7년 뒤 에이즈로 사망합니다. 저용량 AZT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복합 약물요법이 수백만의 생명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이즈를 다룬 영화들이 더러 있었지만, 환자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솔직히 드러내고 살아 남기 위한 생존의 치열한 과정을 감정의 소모 대신 담담히 그려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론의 말대로, 시원한 맥주와 여자와 아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던 일상들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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