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결말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영화, 마음 졸이면서 끝까지 보아야 했던 영화, <어 마우스 풀 오브 에어>입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가 좋았던 것일 수도, 아니면 그 마음 상태의 위험을 알 수 있기에 더 큰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널뛰기하듯 위험한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끝까지 봐야 하는 영화였고, 섬세한 슬픔이 잘 드러난 영화입니다.
부유한 거주지에서 가정적인 남편 이선(핀 위트 록)과 함께 사랑스러운 아이를 키우며 겉으로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줄리아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베스트셀러 아동 도서 작가입니다.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문득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아이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일상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언뜻 보기엔 단순히 산후우울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바라보면, 성장 과정에서 겪은 -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에 대한 - 모든 크고 작은 트라우마들에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매일 매 순간 모든 감정들은 지옥의 문턱을 오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줄리아는 아이의 생일 전날 자살을 시도합니다.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좋은 것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누적된 트라우마와 우울증에서 벗어나진 못합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괴물이 있대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가사도 챙기고 아이들도 돌보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무가치함에 생각이 집중되곤 합니다. 아기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무심하게 사물을 대하는 듯 바라보는 줄리아의 표정은 , 그 마음이 어떨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너무나도 슬프고 막막한 심정에 마음이 아픕니다.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불안정함으로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음의 선택지 앞에 서게 됩니다. 줄리아가 이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수록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합니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보이는 줄리아의 눈빛에 자꾸 마음이 쓰이고 눈물이 납니다.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아이의 육아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할 때면 사랑하는 아이를 온전히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의 치료를 위해 약을 먹어야 하지만 못난 엄마가 될까 봐 자책하며 걱정이 앞섭니다. 지켜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릅니다. 영화에서 줄리아의 유일한 자신만의 안전한 세계_아름다운 동화가 같이 곁들여지며 나름의 엔딩에 희망도 가져보지만 결말은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으로 향합니다.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두고도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놓을 만큼 자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깊은 자책감으로 사라져 갑니다. 생존을 위해 살고 싶어서 모든 걸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티던 현실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안간힘, 순간순간의 감정과 눈빛, 행동 변화들을 표현해내는 아만다의 연기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우린 모두 마음이 아픕니다. 겉으로 드라니기도 하지만 대부분 숨어 있는 감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실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그러면서 생각에 지쳐 쉽게 무기력에 빠집니다. 잠시 행복한 순간조차도 감정의 혼돈에서 빠져나오질 못해 행복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간혹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포근해 보이고, 그 위에 누우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희망처럼 느껴지면 물에 빠진다는 말처럼, 의지로만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되고 죽음이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음이 강한 사람들은 어지럽고 어두웠던 과거를 쉽게 잊고(혹은 극복하고) 앞날만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살 수 있다고 우린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만 잘 다스리면 아픔은 없었던 것처럼 될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제 어둡고 힘든 감정을 '극복(?)'하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치료의 과정을 거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동안 우린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잘 지탱할 수 있도록 '그냥' 곁에서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2022.09.09 - 맛있고 예쁜 그림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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