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에 손님이 오시면 아버지는 항상 가족을 모두 모아서 절을 하게 했습니다. 설날(?)도 아닌데.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나기 놀게 바쁜 때 인사를 하러 부르시면 놀지를 못해 속상한 마음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래도 가정교육 중 하나로 예의를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었던 터라 제가 왜 매번 굳이 절을 해야 하냐며 반기를 들기 전까지 - 더 자라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말을 들으며 지나갔습니다.
'겸손과 겸양'이 몸에 밴 민족 - 나풀거리지 말고 하상 자신을 낮춰야 한다고, 크게 앞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큰 미덕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젊은 청년들에 비하면 우리 세대는 형편없이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심화되어 겸양도 겸손도 아닌 패배주의에 가까운 생각들을 뿌리 깊게 자리하게 했습니다. 뭘 잘해도 '나 이거 잘해'라고 말하기보다는 '해 볼까?' 아니면 '할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정도로만 표현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난 척하는 재수 없음‘이 꼬리표로 따라다니던 때였으니까요.
자신을 알아야 알려줄 수 있다
취업을 할 때 자신을 어필하면서도 적당히 겸손해야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보여주는 자신의 첫인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취업이 절실한 기로에서라면 더더욱. 자칫 자신을 소개하면서 잘하는 것과 좋은 것만 말하게 되면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그러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따른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둥글둥글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지내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그것이 사회생활의 전형인 것처럼 익혀갔습니다.
면접을 볼 때 인사 담당자와 면접 당사자의 마음은 사실 서로 간의 입장 차이일 텐데 보는 관점에 따라서 참 많이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자신을 어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실 면접이란 것은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회사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절차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몸담아 같이 일하고 지내도 괜찮은 곳인지 회사 구성원을 통해 회사를 직접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쌍방 간에 면접을 보는 의미지만 왠지 구직자는 절대적으로 을의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에 대한 것을 정확히 알려줄 수 있어야 자신을 팔 수 있습니다.
시작은 어렵지만 그렇게 배워간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다 비슷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늘 진입 장벽은 높지만 막상 진입을 하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회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좌절을 반복하며 애를 씁니다. 하지만 막상 입사를 해서 회사 생활을 겪다 보면 커다란 퍼즐 판의 한 조각처럼 그 크기에 맞추어 일을 합니다.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 업무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오랜 기간 근무를 하면 할수록 시야가 좁아집니다. 회사의 일을 하다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답답한 사람들이 한 장소에 그득 모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전혀 애쓰지 않고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다 가는 사람들, 그들이 되기 위해 밖에서는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그렇게 배우기 시작합니다. 회사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깊어지면 조직을 떠나거나 직위의 높이를 가늠하며 남거나 두 가지 방향으로 결정이 됩니다. 남은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비슷해지고 조직은 남은 사람들이 간직한 유사한 모습의 틀을 더욱 견고히 쌓아갑니다. 바늘구멍 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취업의 문을 열었지만 발 디딘 그곳이 어쩌면 생각보다 그렇게 치열한 곳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합니다.
미련이 있어서일까요? 겸손이 미덕일지언정 밖에서는 자신을 잘 팔 줄 알아야 한다고 누군가 좀 알려줬더라면(지금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을 잘 알리고 팔 줄 아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에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만들어 가는 기본임이 분명합니다. 그저 겸손만 떨다가는, 망합니다. 지금 당장 자신의 무엇을 팔 수 있는지, 자신의 어떤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Selling point가 인생에 날개를 달아 줄지도 모르니까요.
2024.02.20 - [짧은 생각] 올해부터 삼재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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