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을까요?
때를 맞아 단풍도 들고 욕심을 버리듯 바람에 낙엽도 떨어뜨려 보내고, 나무에 남은 양분으로 다음 계절을 위해 자신을 돌봐야 하는 계절 가운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더 앞서가질 못합니다. 이젠 길에 뿌려진 낙엽이 되어 다음에 올 이들에게 작은 낭만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밟히겠지만, 그 또한 할 일이고 운명일 테지요. 살아 있으면서 한 번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 잎은 없습니다.
한때는 싱그러운 여름의 푸르름도 있었지만 가끔은 폭풍이 휘몰아쳐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폭풍을 견디고 허물어진 자리에서 그래도 아직은 푸른 계절인터라 다시 싹을 틔우고 처음부터 자랄 수 있었습니다.
시커먼 웅덩이를 건너긴 싫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폭풍이 휘몰아치면 과감하게 웅덩이에 발을 담급니다. 그 깊이를 견뎌야 다음을 밟을 수 있기에 두려워도 성큼 내딛습니다.
마지막 한 잎으로 혹한 칼바람과 눈발을 못 견뎌 휘날려갈지 아니면 다음의 어렴풋한 따스한 빛을 받고 조금 더 무지개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무슨 상관일까요?
분명한 건 지금,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는 것과 구부려 숙인 허리의 고통을 약간씩 감내하며 벼를 다 베고난 논 바닥에서 숨은 나락을 하나씩 모으고 있지만, 다가올 혹한에는 그래도 곳간이 넉넉하리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어쩌면, 한라산의 고사목이 되어 길 잃은 이들의 방향이 되어줄 작은 리본 하나 매달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다들 자신의 계절에 잘들 계신가요?
2023.11.28 - [짧은 생각] ‘유지어터 모드’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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