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多]

[짧은 생각] 이젠, 좀 천천히 살아야겠어

나두매일 2023. 5. 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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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바쁜 것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천천히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바쁠수록 살아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뭔가 이루어내는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 그때 왜 그렇게까지 복잡하고 바쁘게만 지냈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을 향한 기승전결이 있듯, 사람 사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무언가 시작이 되었다가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고  그 중간 어느 지점부터 가속도가 붙는 구간이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잘 나갈 때 욕심을 좀 부려도 좋다(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혹은 용납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지나고 보면 그 순간에도 충실하게 즐기고 느껴야 할 것들이 무리한 욕심 앞에 무시되거나 지나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릴 때 책을 읽다가 문득, 세상이 참 넓고도 무한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는데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도 한 사람 몫의 경험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억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으로라도 간접경험을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하지만 책을 실제 많이 읽은 건 아닙니다.) 세상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떠돌 때, 어린 마음에 많이 억울했단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대로 끝나선 안된다고,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면 절대 안 된다고 큰 걱정을 하며 보낸 나날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참 순진한 시절이었네요.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 돌아가고 있고, 너무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모두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해서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잊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모든 가치가 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돈을 벌어도 사람이 먹고살기 위한 것일 테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는 것도 사람이 더 편리하게 살려는 노력이었을 텐데 그 이면에 ‘파괴’가 숨어있고 ‘끝없는 경쟁’과 상대적 ‘차별’과 ‘박탈감’ 그리고 때로는 '죽음'이 수시로 발톱을 드러내곤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도움보다 해를 끼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우리는 그저 숨이 가쁩니다.
 
 
 
밀레니엄 시대, 2000년이 시작될 때가 기억납니다. 대부분 업무가 자동화되고 PC 사용을 하던 때라 1999라는 숫자가 2000으로 바뀔 때 컴퓨터가 인식하던 1이 2로 바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막막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여러 시나리오가 등장했지만 겪어보지 않은 시간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마치 숫자 1이 2로 바뀌면 그동안의 누적된 세상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해 질까 큰 걱정을 했었습니다. 두려워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의 데이터를 어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었습니다. 일종의 에피소드이지만, 제가 근무했던 사무실에선 '심각한 재난'을 막는 의식처럼 중요 문서를 ‘몽땅’ 출력해서 자료를 창고에 보관하기로 결정을 했었습니다. 덕분에 거의 한 달여간, 전 직원은 매일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한동안 계속했었고 지하 창고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박스들이 쌓여갔습니다. 중요도에 따라 몇 년 혹은 십여 년 훨씬 전의 자료를 굳이 출력해서 지하실에 보관하는 행태, 무지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지나친 걱정은 쓸데없는 행동과 판단을 하게 합니다.
 
 
 
이젠, 아예 천천히 살아야겠다고 주변에 선언합니다. 무엇이던 재촉하지 말라고, 생각 좀 하고 그다음에 하자고 말합니다. 습관적인 급한 방식에서 발을 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조금씩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이고 그러다 보니 마치 모든 것이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 세세한 것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때론 황당해서 이해 못 했을 것들조차 이해해 볼 여유가 생깁니다. 실제 그렇지는 않지만 마치 사람이 착해진 것처럼 말이죠. 간혹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도 듣게 되지만, 그건 분명히 오해입니다.
 
 
 
급하게 가는 세상과 급하게 가는 사람은 그냥 가라고 두면 됩니다. 멀티플 한 경험이 결코 유쾌한 적이 없었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PC화면을 이해해 가며 뭔가를 메모하고 주고받는 미친 행위를 이젠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한 순간,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도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급하게 가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은 필요한 시간만큼 살고 느끼고 그리고 소멸해 가는 과정인 것이 분명합니다. 젊은 시절 너무 바빠서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하던 사람이 조금 여유가 생긴 시점이나 노년에 수많은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결국 여유 있는 삶을 단 한순간도 누려보지 못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여하튼, 이젠 매일 주변을 좀 둘러보며 느껴가며 산책하듯 살아야겠습니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뛰면서 산책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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