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늦은 밤, 갑자기 근사한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어서 Dmitry Shishkin의 'La Campanella'영상을 찾아 피아노 건반 위 손가락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크고 깊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맑은 종소리의 울림, 혹은 난간을 따라 흘러온 빗방울처럼 또르르르 떨어지는 청량한 느낌을 느껴 봅니다. 소리의 높낮이와 짧고 긴 울림의 파장을 파노라마처럼 소리의 흔적대로 따라가면 서서히 머릿속이 맑아집니다. 깊은 밤중이라 소심하게 이불속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그러다 낯선 길거리 연주가들의 음악을 따라 여행을 합니다. 아마도 오랜 기간 여행 중인 듯 앞뒤로 백팩을 멘 사람이 무심히 길을 지나가다가 거리에 놓인 피아노에 앚아 'Bohemian Rhapsody'를 연주하고 사라집니다. 젓가락 행진곡을 신나게 치면 다른 여행객이 합주를 하고 쿨하게 가던 길을 갑니다. 오가던 사람들은 가끔씩 이렇게 서로 연주를 하고 모두가 음악을 듣게 됩니다. 잘 치는 사람도, 잘 못 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즐겁게 연주를 하고 유쾌하게 사라집니다. 코로나 시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여행이 아직은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답답함을 덜어보기 위해 랜선 음악 여행을 시도해 봅니다.
우리는 늘 꿈을 꾸고, 때로는 꿈꾸던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악기 연주 외에도 Martin Hurkens의 'You Raise me Up' 길거리 노래 공연도 좋습니다. 촉촉이 비가 내리는 길 위에 선 노신사의 노래를 듣습니다. Hurkens는 1953년생 네덜란드 출생으로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꿈을 접고 32년간 제빵사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레 실업자가 된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막내딸은 ' Holand's Got Tallent '를 신청하게 되었고, Hurkens는 우승을 했습니다. 거리에서 부른 노래를 녹음한 동영상은 온라인에서 굉장히 유명합니다. 비를 맞으며 두 손을 모으고 담담하게 정성을 담아 노래합니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일랜드 정서가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잔잔한 노래는 담백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은은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같이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집니다. 요즘처럼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지만 자신의 잊고 살았던 꿈에 다가가는 용기와 진정성이 듣는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줍니다.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Hurkens는 자신이 한 말처럼 "우리는 늘 꿈을 꾸고, 때로는 꿈꾸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행복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이 특별히 더 힘든 날은 아니었지만 맑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긴 시간들을 잊고 깊은 밤 혼자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많은 곳들을 향해 잠시 머무는 자리는 늘 설렌다
노래의 고요한 여운을 안고 더블린으로 갑니다. 언제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 더블린의 고즈넉한 모습들과 한가로운 거리의 공연을 봅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풍경과 급할 것 없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연주에 몰입한 뮤지션의 기타 연주를 들어봅니다.
지역을 조금 더 옮겨서 좀 더 큰 규모의 공연으로 뉘른베르크 광장의 '베토벤 환희의 송가' 플래시몹을 봅니다. 한 어린 소녀의 리코더로 작은 멜로디가 시작되고,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 둘 더해지며 음악이 풍성해집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울려 퍼지던 '환희의 송가'가 한낮 큰 광장에 울려 퍼지는 느낌은 낯설고 새롭습니다. 연주가 무르익을 즈음 합창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음악은 절정을 이룹니다. 클래식 음악의 연주에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가슴 벅찬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연주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 연주들을 더욱 웅장하고 풍성하게 빛내 주는 것이 사람의 목소리라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음악은 위대합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모르는 느낌들을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씩 꺼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전혀 몰랐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차역에 머물던 사람들의 피아노 연주와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협주, 그 연주 뒤로 들리는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끊이지 않습니다. 조금은 멀어진 여행의 기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공항과 기차역, 정거장...출발과 도착이 있는 곳은 그 어느 곳이던 아직 가보지 못한 더 많은 곳들을 향해 잠시 머무는 자리이기에 늘 설렙니다. 낯선 향기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공존합니다. 그리고 그곳엔 항상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조심스럽고 지루한 시간들이 아직 남아있는 요즈음, 구애받지 않고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는 랜선 음악 여행의 이야기들이 새삼 위안을 줍니다.
2022.07.26 - [짧은 생각] '사랑'에 대한 자유로운 '착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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