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뒷골목, 헬스 키친(Hell's Kitchen). 미국 사회에서 한쪽에 비켜서 있는 아일랜드계, 남미계, 아시안 등 소수의 소외된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4명의 자유분방한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성당에서 바비 신부(로버트 드니로)를 돕는 복사로, 거리에서는 갱단 두목이며 레스토랑 주인인 킹 베니(비토리오 개스먼)를 따르는 꼬마 갱스터로 나름의 즐거운 소년 시절을 보냅니다. 헬스 키친은 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일례로 다른 지역 마약상이 헤로인을 들여와서 헬스 키친의 12살짜리 소년이 죽은 사건으로 그 마약상을 끝장내 버리는 사건에서 보듯, 비록 헬스 키친은 갱단이 판을 치고 부패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만연한 부패 속에서도 그들 나름의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그런 마을입니다.
만일 지금 도망간다면 죽을 때까지 도망자가 된다
이곳에서 네 명의 꼬마- 로렌조(조셉 페리노)와 마이클(브래드 렌프로), 존(조프 위그도어), 토미(조나단 터커)가 자신들만의 행복을 만들고 우정을 쌓아가던 중, 어느 날 장난으로 시작됐던 일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남자를 죽음까지 몰고 가면서 그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천방지축의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는 바비 신부, 자신도 소년원을 겪고 신부가 되어 그 누구보다 아이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아이들을 걱정하고 든든하게 지원하려 애씁니다. 아이들은 도망가고 싶었지만, 9개월에서 18개월까지 실형을 선고받고 윌킨스 소년원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상습적인 구타와 독방 감금, 최루탄과 향정신성 약 투여, 그리고 어린 소년들에게 가해지는 교도관들의 성폭행까지, 힘겨운 수감 생활을 견뎌낸 아이들은 - 신문기자가 된 세익스(제이슨 패트릭), 이제 막 법학 학위를 따 검사가 된 마이클(브래드 피트), 지난날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마약과 폭력의 세계에 빠져 버린 존(론 엘다드)과 토미(빌리 크래덥) - 고통과 수치심 속에서 14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윌킨슨 소년원에서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청년이 됩니다.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녹스와 마주친 존과 토미, 이제는 늙어버린 그 잔인하고 악랄했던 교도관 녹스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여버립니다. 14년을 묵혀둔 아이들의 복수가 펼쳐지고, 바비 신부와 킹 베니의 고용인 변호사 대니 스나이더(더스틴 호프만)가 이들을 돕게 됩니다. 바비 신부는 신부로서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서 깊은 갈등에 빠지지만, 세상에서 소외되고 그로 인해 오랜 세월을 숨죽이며 고통 속에 지내왔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적인 고민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저 눈을 감고 모든 걸 잊고 싶어... 난 지쳤어
숀 녹스(케빈 베이컨)의 악랄하고 잔인한 폭행과 야비한 행동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분노를 유발합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 네 명의 삶이 망가졌지만 잘못에 대한 죄의식이나 반성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녹스를 존과 토미가 살해하며 시작된 복수, 그동안 트라우마로 묻어뒀던 지난 시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끝내기 위해 마이클은 법정에서 합법적인 복수를 계획합니다.
"이제 돌려줄 때가 왔어. 존과 토미가 시작했어. 시작된 거야. 지저분하고, 계획과는 달라도 시작됐다고. 너와 내가 끝내야 해.... 아직도 불 켜고 자지? "
친구들에 대한 변호와 교도관들에 대한 기소를 동시에 하기 위한 마이클의 치밀한 노력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존과 토미의 무죄가 선고되고 마이클이 세익스와 나누던 대화에서, 마이클의 잊고 싶은, 너무나도 지친 마음이 느껴집니다. 진실로, 그동안 마음속에 안고 살았던 아픈 기억들이 '복수'라는 장치로 그들의 인생에서 모두 지워졌길 바라게 됩니다. 또한 자칫 어그러질 수도 있던 법정 싸움에서 그들을 끝까지 믿고 지켜준 바비 신부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무죄 선고 후 모두 모인 친구들끼리의 마지막 술자리 - 내레이션과 함께 옛날 노래를 함께 부르고 추억하며 술 마시던 그 장면은, 오랜만에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인생의 가혹하고도 쓸쓸한 허무함이 느껴져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로버트 드니로, 더스틴 호프만, 브래드 피트, 케빈 베이컨...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들의 연기력, 이들의 캐스팅 조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오래된 영화지만 반복해 보면 볼수록 더 몰입하게 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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