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多]

[짧은 생각] 오늘도, 일상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나두매일 2022. 3. 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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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힘든 일이 연달아 생기게 되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쉬어갈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우린 또 오늘처럼 내일을 맞이하고 내일을 또 오늘처럼 살아갑니다. 가끔 그 힘이 무엇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일이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못할 때 일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힘은 무엇인가? 철학적일 필요도 심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몇몇의 낯선 경험들이 잊혀졌다가 일깨워지는 순간 새로운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를 가기 전에 초등(당시 국민) 학교 때엔 소풍을 가거나 체육행사를 하려는 날은 유독 비가 많이 왔었습니다. 소풍을 가기로 한 날에 몇 번이고 날짜 변경을 했었지만 결국 소풍을 가지 못했고, 지역의 큰 행사였던 체육 행사도 세 번까지도 날짜를 바꿨었지만 결국 매년 하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중학교를 가고 나서도 비가 오면 모든 일정이 취소되거나 변경될 걸로 생각했지만 중학교는 달랐습니다. 비가 와도 학교 모든 행사는 그대로 진행이 됐었고, 날이 아무리 덥고 아이들이 운동장에 하나 둘 쓰러져가도 뙤약볕 아래서 교장 선생님의 긴긴 조회는 오전이 다 가도록 끝날 줄 몰랐습니다. 중학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전에는 다 바꿔서 하려다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던 것들을 왜 힘들어도 다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학교 이후 학교 계획은 미뤄지거나 취소된 적이 없이 모두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나름 답을 찾은 것은 내가 좀 더 자랐고 어른이 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는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쯤, 하루는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상을 치러야 해서 다른 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퍼하던 즈음이었고 그때의 경험도 참 생소했었습니다. 멀리서 온 친척들은 가족의 슬픈 장례식에 와서 모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축하할 잔치라도 온 것처럼 반갑다며 안부를 묻고 크게 떠들었습니다. 밤새 화투를 치며 술을 마시고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도록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슬퍼하지 않는 친척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밥조차 넘기지 못할 만큼 그 광경을 견디기엔 너무 힘이 들었었습니다. 


  그때 집안 어른의 말 한마디,
"어서 먹어!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며칠을 그렇게 서로 떠들고 먹고 마시고 장례를 치르고는 헤어져 각자의 갈길을 가고 난 후의 텅빈 쓸쓸함. 그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관에 누워계신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했고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자는 듯한 그 야멸찬 말이 한없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오랫동안 이해되지 못한 채 어린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었는데, 나중에 훨씬 더 어른이 되고 나서 나와 주변 여러 사람들의 사건 사고와 죽음을 수 차례 자주 마주하고 나서야 조금씩 서서히 그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생겼더라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오늘을 살아남아야 하니까,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하니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 자고 힘을 내서 다시 다음 날을 살아야 했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으로 숨 쉬고 움직여야 했고 매일의 일상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어제보다 더 열심히 오늘, 일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도,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이 모든 순간들을 견디기 위한 힘을 키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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