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동네에 있던 은행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지역 인구의 6~70%를 차지하고 있고 지역의 특성상 은행이 사라지면 불편이 불 보듯 뻔한 지역입니다. 노인들은 은행을 좋아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고 대면보다 비대면에 익숙하지만 노인들은 자식들이 편하게 사용하라고 체크카드를 만들어 줘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공과금은 당연히 지로를 들고 은행에 가서 직접 내야 안심이 되고, 은행에서 돈을 보내고 영수증을 받아와야 보냈다는 안도의 느낌을 갖습니다. 노령 인구가 점차 급증하고 있지만 그 속도 이상으로 세상은 디지털 세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빠른 세상의 변화 속에 노인들이 적응할 시간조차 부족한 상태에서 노인들은 왜 은행을 좋아하는지, 은행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내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을 빼가서 싫어
아파트 상가 내 지점을 운영하던 은행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한동안 여러 날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매일 방송이 나오고 주민들이 같은 시간에 모여 항의를 이어갔습니다. 주로 노인들이 모인 시위였고 지난한 시위의 결과로, 은행은 결국 디지털 점포로 바꿔서 직원을 상주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나마 대면 창구를 유지할 수 있어 주민들은 수용을 했습니다.
시중 은행들이 디지털 금융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은행의 구조조정과 함께 창구 업무를 줄이고 있습니다. 이는 오프라인 채널(지점)을 통한 업무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인터넷뱅킹이나 전화 업무 등 비대면 업무가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결과이고, 여기에 코로나19 시기를 보내면서 대면 서비스가 급격히 축소된 것도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노인들은 점차 현금 없는 사회로 갈수록 디지털 금융 취약 계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초기의 비대면 창구였던 ATM기도 어느 시점이 되면 사라질지 모릅니다. 뉴스 보도에서 보듯, 스웨덴 은행이 현금 거래를 하지 않아 돈 찾으러 기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는 노인의 말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돈을 직접 내고 물건을 사야 마음이 편한데 체크카드로 사면 모르는 누군가가 내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을 빼가는 느낌으로 불안을 느낍니다.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되고 불안하지 않은 노인의 특성입니다.
은행이 사라지면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비대면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나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해 '가면 안되는 곳'으로 인식하는 노인도 많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국민 중 인터넷을 이용률은 2020년 기준 40.3%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노인의 절반 그 이상이 인터넷 사용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정보 격차가 발생하고 노인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자산을 지키거나 운용하는 데 있어서 저축과 대출, 결제 등 은행 이용의 기본 권리에 제한을 받습니다. 금융권에서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소외된 노인들은 '자신을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잠깐 휴대폰의 버튼을 잘못 누르는 것만으로도 당황한 노인이 길을 가는 젊은이를 잡고 휴대폰을 봐 달라고 맡기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잘못 눌러진 경위를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노인들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 일부 노인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나 노령연금 수급자가 은행에 입금된 수급 비용을 찾지 못하거나 계좌 관리를 하지 못해 필요한 물품을 제때 구입하지 못하거나 공과금을 맞춰 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생활비나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생계가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은행 운영방식의 입장에서 접근하기보다 디지털 금융의 취약 계층을 고려해 최소한의 이용권은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비용의 감소나 은행 운영의 효율성만 따져 무조건 지점을 없애기보다는 직원을 상주시키는 방식으로 일부 대면 방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
흔하게는 고객센터 ARS 번호에서 조차 사람과 대화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노인들입니다. 빠른 말과 기계적인 음성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갖고 일하고, 저축하고, 생활하던 것으로부터 어느 날 내가 소외되어 제한을 받고 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사라진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노인층의 우울증으로 또 다른 사회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노화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모두 늙고 세월이 가면 적당한 관심에서 소외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분명한 권리에서조차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이 사라지는 시점, 현실적 제도가 뒷받침되어 서로 간의 소통과 배려가 필요한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잠시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2.06.14 - [짧은 생각] 인연의 흐름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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