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서 자라고 사회생활을 하며 매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합니다. 어떤 이들과는 긴 세월을 함께 하고 어떤 이들과는 잠시 잠깐 스쳐 가기도 합니다. 어떤 만남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또 어떤 만남에서는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지치기도 합니다. 원하지 않아도 같이 가야 할 사람이 있고 원해도 같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놓여있는 곳이 나를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 곳에 내가 위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우리가 부르는 '인연'으로 묶어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함께해 온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었던 사람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내가 함께했던 '인연'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인연의 고리들 엮지 말기
'인연'이란 불교의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인은 원인을 말하며 연은 원인에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인연'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칭할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정도로만 이해를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나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혹은 연고라고도 하고 일의 이력이나 이유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의 인연과 사물과 사람 사이의 인연, 사물 간의 인연들엔 모두 이유가 있고 분명한 결과가 있습니다. 말 못 하는 아기가 우는 소리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적인 느낌의 변화를 알 수 있고, 개미 무리들의 이동에서도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무심해 보이는 일상들이지만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듯 사소한 사물과 상황들도 인연으로 만들어지고 인연들로 사라집니다.
예전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싫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척 억울했을 겁니다. 나의 미숙한 성격 탓이려니 했고 많이 미안했지만, 돌아보건대 기질적인 문제였을지 스쳐가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흘러가야 할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느라 에너지가 낭비되고 지쳐서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 그걸 몰랐고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끙끙대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 오랜만에 연락이 되더라도 늘 마음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잦은 연락은 하지 않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웃고 화내고 떠들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고 내가 처한 상황들은 결국 그 한가운데 나를 두기 마련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던 시절엔 모든 시간과 사람을 붙잡으려 무던히도 안간힘을 써 왔습니다. 이젠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마뜩지 않은 상황은 과감하게 놓아버리려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인연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조용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곁에 둔다> 중 마음이 머문 글귀 일부를 함께 공유합니다. 모처럼 만나는 아름다운 언어들의 조합이 지금 내 시간에 다가온 따스한 한 가지의 인연으로 느껴집니다.
곁에 둔다
... (중략)...
응달에 숨어 겨울을 나는 눈보다
심장에 닿아 흔적도 없이 녹는 눈을
곁에 둔다
... (중략)...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곁에 둔다
류시화 <곁에 둔다> 중에서,
돌아보면 그간의 나의 인연들엔 억측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억지로 떼쓰듯 우기기도 하고 우격다짐으로 좋은 결과만 생각하며 밀고 갔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갖은 상황의 변수들 속에서 만난 사람과 상황들, 그 안에서 나와 인연을 맺는 작은 고리들이 그간의 어설픈 생각들 속에 수없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내가 유일하게 선택하고 함께할 수 있었던 '가족'이라는 중요한 인연을 '지금' 감당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나와 맺은 인연들은 흩어지고 다시 또 모이겠지만 어떤 인연을 만나더라도 이젠, 조금은 멀리서 덤덤히 바라보려 합니다. 내 몫의 인연들은 내 삶의 노력만큼 결실을 맺을 것이기에 그것이 내 몫이라면 조금 놓아두어도 천천히 곁에 남아 머물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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