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보기]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아무르 Amour

나두매일 2022. 12. 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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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긴 세월 공유의 시간을 보내고 같이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오랜만에 프랑스 감성 영화 <아무르 Amour>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흑백 영화는 아니지만 보는 동안 끝까지 무채색의 느낌으로 남아있는 영화, 세상과 다르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들에 집중하며 노부부의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여느 때 저녁처럼 조르주(루이 트린티냥)와 안느(엠마누엘 리바)는 음악 공연을 다녀옵니다. 감동과 선율을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냅니다.


참 아름답다. 인생이... 길기도 하고...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사소한 대화들, 평범한 일상이고 스쳐가는 감정이지만 서로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면 '미안해', '용서해' 라며 서로에게 살갑게 이야기합니다. 소소한 즐거움 속에 서로 웃으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내 안느의 몸이 마비 증세를 보이며 거동이 불편해집니다. 식사 도중 행동을 멈춘 안느의 모습, 병원에서 돌아와 이전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진 않지만 의식적으로 일상을 회복하려 애쓰고 제자의 방문을 받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도 보지만 함께 해 온 행복하던 부부의 시간은 의미가 조금씩 힘겨워집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지만 지난 앨범을 보며 - 그 긴 세월을 아름답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시간을 떠올릴수록 현실의 답답함이 더 커질 뿐입니다. 아프면서 점점 고약해지는 안느는 자꾸 현재와 과거의 자신이 오버랩되어 괴리감으로 착잡해집니다. 화장실을 가거나 머리를 감고 씻는 행동, 식사를 하는 그 쉬운 일상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쓸모없다고 느끼는 순간순간에 예리한 고통이 따릅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하기 싫은 안느지만 비정상적으로 '생존만' 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 큰 좌절을 불러옵니다. 창피하고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됩니다.



노쇄한 몸의 불편이 의사 표현을 못해 소통까지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자신과 가족은 어디까지 그 참담함을 참아낼 수 있을까요? 불편한 다리로 안느를 지극히 보살피는 남편 조르주,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싶지만 점차 지칩니다. 누구의 손도 아닌 남편의 손길에서 유일한 위안을 느끼는 안느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어 점점 괴팍하게 마음까지 병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결국은 안느를 병원에 보낼 수 없는 조르주의 마음이, 안느의 마지막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안느를 곱게 단장시켜 아름다운 꽃잎으로 장식하는 조르주, 안느의 아름다웠던 삶과 죽음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그의 사랑은 현실적 선택을 합니다.




점점 더 나빠지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끝나겠지



전체적으로 느린 구성과 움직임들, 간간히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노년과 죽음, 그 과정에 어떤 모습 이어야 할지 또 어떤 선택이 가능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돌아보는 인생이,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다면 축복일 것 같습니다. 프랑스 감성 특유의 수다스러움이 딸의 방문에서, 특유의 상징이 비둘기에게서, 특유의 의미와 풍경이 안느와 남편의 일상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상태조차 완전히 잊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변덕처럼 또 바뀌고.. 안느 자신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도 모두 그 시간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생존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 없고 세상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느낄 순간이 온다면 우리에게 어떤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요? 또렷한 의식과 반응할 수 없는 몸의 괴리감, 마지막에 결국은 음식과 물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서로 항상 미안해하고 용서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던 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인생의 아름다운 마지막은 또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올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까지 그 모습들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조르주의 담담한 선택이 그래서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장면 사이사이 조용히 혹은 순간 멈춘 듯, 길게 침묵이 흐르는 장면들에서는 누구도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누구나 반드시 경험하게 될 죽음의 무게를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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