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노인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 적당한 휴식과 여유로운 시간들이 주어지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충분히 쉬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해 보고 여행도 합니다. 하지만, 꿈처럼 자유롭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조금 지루해지며 무언가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을 맞습니다. 은퇴를 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는 70세 노인 벤, 그것도 젊은이들이 가득한 쇼핑몰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원을 합니다. 우연히 본 광고는 지원방식부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룬 것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누구나 젊을 때 이룬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이란 원래 만족을 모르는 그런 존재이니까요. 30대 여성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이 일하는 회사로 키워냅니다. 틈틈이 체력을 관리하며 직접 직원들과 소통하고 직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챙깁니다. 특히 고객 관리를 신경 쓰고 쉴 틈 없이 회사일을 챙기느라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남편의 외조에도 눈코뜰 사이 없이 바쁜 줄스, 부모님의 잔소리에 지쳐있던 터라 새로 뽑은 70대 인턴을 만나고 적응하는 과정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벤은 일이 주어지지 않자 스스로 일을 찾아서 조용히 동료들을 돕습니다. 직원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주변에 불편해하는 일들에 조언도 하며 조금씩 친화력을 발휘합니다. 낯갈이하는 줄스의 차를 운전하며 서서히 친해지는 벤, 벤의 배려가 주는 편안함에 줄스도 조금씩 긴장이 풀립니다. 출장 중 벤과 남편의 외도를 상의하는 줄스의 모습은 아빠와 속상해하는 딸의 대화처럼 편안해 보입니다. 벤은 자신이 평생을 일하던 그 자리에서 줄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열정을 지키며 성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함부로 위로하거나 쉽게 조언하지 않고 곁을 내어줍니다. 그뿐이죠.
살면서 벤처럼 진짜 어른과 함께 고민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잠시 났는데요, 만날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 해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큰 소리 내지 않으면서 그저 가만히 웃음 진 얼굴로 손주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새로운 이야기를 곁들여서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주곤 했던 그런 진짜 어른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외할머니처럼 이야기보따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지만 나이를 잘 먹고 나이에 맞는 인생의 품위를 갖춘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진짜 어른과 어른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건 소모를 다해서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이 연륜이라는 저금통에 쌓여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는 의미라는 걸 벤을 보고 배웁니다. 어수룩하고 실수 투성이였던 젊은 시절의 경험들이 누군지도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블록처럼 쌓아 만들어내는 과정,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젊었지만 아무런 확신이 없던 시절에서, 불안 가득한 시절에서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것이 나이 먹음일 겁니다. 그렇기에 어떤 욕심도 불평도 덜 하게 되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일 테지요. 늙어간다는 건 무형의 것이 유형의 형체로 만들어져 점점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울퉁불퉁한 한낱 진흙 덩어리를 잘 빚어 다듬고 깎아서 마음속의 형상을 드러내게 하듯 말이죠.
처음 영화를 봤을 땐 그래도 나름 젊었을 때라 성공하고 싶었고 성과가 중요하던 때였습니다. 그땐 노인의 관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줄스의 입장에서 그의 성공과 결혼 생활이 잘 유지되길 바라며 봤습니다. 지금은 나이를 먹고 보니 줄스가 아니라 벤이 보입니다. 은퇴를 하고 잠시 휴가를 얻은 것처럼 시간을 사용하다가 재취업을 하게 된 그의 입장을 들여다봅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니 꿈꾸는 은퇴지만 벤의 고백대로 지루할지 모릅니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은퇴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크게 공감이 됩니다. 처음엔, 피오나와의 장례식 데이트도 그땐 왜 못 봤을까요? 역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장례식에서조차 유쾌하게 반가운 만남을 할 수 있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벤을 보며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꼰대 말고 진짜 어른처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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