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린 무언가 새로운 정리와 각오를 합니다. 코로나의 깊숙한 지점에서 시작한 2022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이지만 이젠 익숙하게 매일을 지냅니다. 숫자만으로는 처음보다 심각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익숙함과 지침이 공존하며 그냥 그렇게 지내게 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보내며 남겨둘 것과 그냥 흘러 보내야 할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해가 바뀐다고 사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환경을 바꾸거나 생활을 바꾼 기억은 없습니다. 시기적으로 혹은 주변 분위기상 그렇게 비슷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뀔 땐 스스로 먼저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봅니다.
매번 드러나는 욕심의 흔적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 정리와 집안 정리를 합니다. 예전보다 짧은 계절을 느끼지만 사계절에 익숙한 탓에 아직은 계절별로 옷을 정리해야 편합니다. 그러다 낯선 옷과 물건들을 만납니다.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용도와 사용 의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과 옷들이 분류되고 나면 모든 것은 마술처럼 단출해지고 주변이 가벼워집니다. 마음과 공간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스스로 물욕이 많지 않다고 자부했지만 나름의 물욕은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추억을 돌이켜 보면, 좋았던 것들과 나빴던 것들이 섞여 기억됩니다. 내가 선택해서 버리고 싶어도 나빴던 것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던 것 같은 행복했던 사소한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기억들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물건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언젠가 꼭꼭 넣어둔 자리에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추억'이라 부르고 그냥 둬야 할지, 적어도 재활용을 하게 버려야 할지 간혹 망설여지는 순간들도 옵니다. 버리긴 아쉬운, 하지만 더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 뻔한 것들 속에 늘 갈등이 생깁니다. 왜 선뜻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얄팍한 반성과 다짐들의 최후
나이를 먹고 나서 달라진 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지나간 것을 되돌아보고 뒤적여 보는 것에 더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과 함께한 것들이지만 되돌아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바라봅니다. 때문에, 유독 어느 한 시절에 마음이 멈춰 있어서 그 순간의 기억으로 남은 물건들에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매년 12월이면, 마치 어릴 때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새 공책과 문구들을 잔뜩 사고 학기 말이 되어 몇 장 사용하지 않은 공책들을 넘기던 때의 머쓱한 기분과 흡사한 상태가 됩니다. 나머지 공백을 채우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난 것처럼, 새로운 결심으로 시작한 것들이 홀연히 사라져 있기도 합니다. 흔적만 남은 무용지물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나약함과 게으름 어느 중간쯤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마주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들을 그냥 버려두어 가감 없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 끝 지점은 항상 허탈함과 민망함이 함께 합니다.
나름 잘 정리해가며 깔끔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을 때 텅 빈 공간을 가급적 그대로 둬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결국 '필요성'이라는 구실로 공간을 꾸역꾸역 메워갑니다. '방심'으로 채워갈수록 조촐함은 잊어버리고 복잡함에 진저리 치는 상황이 매번 반복됩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습관적인 얄팍한 다짐과 숱한 반성들의 최후는 처참합니다. 의례적인 연습처럼 연말이면 새로 맞게 될 날들을 위해 또 계획을 세우겠지만, 머릿속과 마음속의 관계들을 정리하며 이젠 같은 고민을 멈추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2.12.06 - [짧은 생각] 첫 겨울 월드컵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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