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전 세계가 깊은 공포 속에 죽음과 생존으로 온통 몸살을 앓는 과정에서 스포츠 경기 일정도 달라졌습니다. 여름이 아닌 겨울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이 그것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코로나의 감염 확산으로 각국에서도 정상적인 스포츠 경기를 치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관중이 있는 경기가 가능해지고 사람들의 각국 간 이동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월드컵 유치 비리 및 경기장 조성 과정의 노예 노동자 사망, 성소수자 탄압 등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시작한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뿐 아니라 참가국 각국의 정치적 우려와 문제들을 안고 치러지는 경기는 단순히 축제로써 즐겨야 할 경기가 아닌 그 이면을 자꾸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 어떤 이변도 가능한 시간
전 세계 각 대륙별 국가들의 경기력에 실력 차이도 확인되는 건 사실이지만, 경기 결과에서 경제적 우위로 결정되는 선진국들만의 잔치가 아니란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란이 첫 경기부터 크게 지고 이란의 반정부 히잡 시위와 경기에서 16강 탈락에 환호하던 20대가 군경의 총에 사망하는 기사를 접하며 실시간 들려오는 각국의 반응들이 마음을 아프게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메시의 나라가 첫 경기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개인의 능력과 함께 해야 할 팀워크가 중요한 축구 경기 특성의 힘겨움도 봅니다. 전성기를 누리던 선수들의 전만 못한 기량에서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월드컵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러 특이한 기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와 이야기가 항상 만들어지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축구 강국 독일을 역전으로 이긴 일본, 스페인이 일본을 깨주길 바라던 독일인들의 진심마저 깨져버린 결과와 그에 따르는 뒷 이야기들, 숫자 외 여러 감정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집니다. 이번 월드컵처럼 아시아 여러 국가(호주, 한국, 일본)들이 16강에 오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각국의 새로운 신인 선수들의 등장과 활약도 항상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각국 응원단의 응원도 여러 가지 부문으로 측정을 하는데 ‘흥’의 민족인 한국의 응원은 록공연장의 데시벨을 기록했다는 재밌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실력을 뽐내도 좋은 기회
축구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월드컵만큼은 꼭 보게 됩니다. 실력으로 월드컵 본선까지 진출한 각국 선수들, 국가를 대표한 선수들이지만 개개인의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팀웍으로 경기를 이겨야 하는 게임, 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역량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 경기에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기회와 찬스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기민한 판단과 움직임이 90분 내내 작용합니다. 90분의 시간은 한 게임이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녹아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몽땅 집약되어 있습니다. 선수들은 기대, 흥분과 아쉬움, 분노와 짜릿함, 실패와 성공에 대한 모든 감정에 가장 솔직하게 반응하며 진실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짧은 순간에 매번의 기회, 순간에 거짓으로 반응할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이때 개인의 습관과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이 기술이던, 인성이던, 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축구 전채, 골든보이 그 이름도 화려한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아 비난에 시달리던 벤투 감독은 16강이 결정되는 순간, 퇴장으로 경기를 이끌지 못했음에도 갑자기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축구는 잘 몰라도 이강인이 경기를 뛰고 안 뛰고는 그의 출전 전후로 경기의 그림이 달라집니다. 풀리지 않고 답답하던 경기가 속도와 정확성이 달라지는 축구로 경기가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창의적인 경기는 예측불허라 재미를 더해줍니다. U20 월드컵의 이강인의 인터뷰는 아직도 신선하게 기억됩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강인은 월드컵 우승을 하고 싶다는 '선언'을 합니다. 이전 그 누구도 한 적이 없었고, 또 가능한 소리야?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던 기성세대에겐 돌발적이고도 당돌한 말이었고 다소 과해 보이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준우승을 합니다. 그렇게, 그동안 모두에게 숨어있던 패배의식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 글이 등록되는 시점엔, 또 다른 재미있는 기록과 이변의 주인공이 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모두 응원합니다.
2022.11.15 - [짧은 생각] 가족 중 한 명하고만 여행을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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