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 모두 아침 운동에 열심입니다. 출근 시간 훨씬 이전 새벽부터 산책길을 걷고 운동기구로 근력을 키웁니다. 대개가 중년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가만히 보면 빠르게 걷지 못하는 걸음걸음들, 어깨의 한쪽을 펴지 못해서 구부정한 상태에서 한쪽만 기구에 기댄 채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들, 어딘가 활기찬 모습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부분 굳어지는 것들을 풀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자연도 세상인심도, 사람의 몸과 마음도 모두 변합니다. 태어날 때의 그 보드랍던 아기의 손은 성장하고 세상을 살면서 점점 거칠고 딱딱한 노인의 손으로 변합니다. 어릴 때의 말랑말랑한 스펀지 같던 마음과 뇌도 성장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면서 역시 수많은 경험 속에서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에 더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아스팔트 대신 꽃을 심을 수 있길...
아파트 단지 내 노인이 많이 거주하다 보니, 단지 내 작은 자투리 땅이라도 생기면 경쟁적으로 무언가를 심고 수확하곤 합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용의 빈 터이지만 매년 새로운 식물(작물?)들이 자라고 거둬지고 합니다. 아파트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경작하지 말도록 알리고 권유하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매년 의례적인 공지와 경작은 동일하게 계속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좁은 경작지(?)에 공사장의 포클레인이 등장했습니다. 작물을 심지 않도록 아무리 독려를 해도 효과가 없자 경작하던 땅을 그냥 갈아엎어 버립니다. 그렇게 며칠간 줄을 쳐 두고 아무것도 못하게 한 이후 아예 근본적으로 아무런 마음도 먹지 못하게 도로포장에나 사용하는 아스팔트 작업을 합니다. 다음날, 평평해 보이고 깔끔한 보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왠지 섬뜩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식이 이렇듯 일방적이지 않고는 절대 해결이 안 되는 문제였던가 싶기도 하고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길목의 환경과 어울리게 나무나 꽃을 심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까만 도로포장용 아스팔트로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직선적인 행정이 답답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주민들의 비협조가 원인이라고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렇게 서로 의견을 모아 행정력에 반영하기는 힘이 드는가 봅니다. 아직 행정이란 그냥 관공서에서 일방적으로 실행해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
어릴 때 꽤나 유연했던 터라 텀블링이나 체조 기술 몇 가지는 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땐 손가락을 잘 구부리지 못하는 할머니나 엎드려서 등을 뒤로 젖히지 못하는 어른들을 보며 답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걸 왜 못하지?...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면 모든 신체가 조금씩 굳어서 유연하게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꾸준한 자기 관리를 하며 신체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몸이 유연한 만큼 또래보다 마음도 유연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도 경직성이 덜 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것을 보고 경험할 기회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요가를 배운 노인들은 자세가 좋아지고 건강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몸과 마음에 활기를 얻습니다. 끊임없는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사고의 영역이 넓어져 과거, 현재, 미래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몸이 경직된다는 것은 유연성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이기도 하겠고 경험으로 만들어진 고정관념도 점점 확고해집니다. 노인들의 고약함이나 고집들이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모든 생활에서 그만큼 사고의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을 미루면 뇌가 굳어지고 한 번의 팔다리 움직임을 미루면 몸이 굳습니다. 몸도 마음도, 뇌도 모두 경직된 정도가 심해질수록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경직은 죽음 그 자체입니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그나마 조금씩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세상이지만, 다시 과거의 그 딱딱하고 경직된 세상으로 빠르게 쓸려가는 지금, 모든 것들이 위태롭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계와 거리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팔다리가, 뇌가 묶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위태로운 세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휠지언정 꺾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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