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가족들 생활 패턴이 서로 맞지 않아 각자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어릴 땐 특별한 일이 거의 없던 때라 항상 일정한 시간에 모든 가족이 TV 뉴스를 보면서 저녁밥을 먹곤 했습니다. 매일 온 가족이 같이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밥상 앞에서는 지금처럼 하루 일과를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밥상 예절로 조용히 밥을 먹던 시절이라 오로지 눈과 귀는 TV를 향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하루의 사건 사고와 가십들이 연거푸 쏟아지는 속에서 묵묵히 숟가락을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뉴스가 다 끝날때까지 아버지가 낮은 소리로 계속 화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자식들에게도 험한 말 한마디 안하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밥상에서만 화를 내는 이상하고도 불편한 상황이 반복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매일매일 말세야
여러 매체가 발달되어 지금이야 뉴스들도 선택해서 접할 수가 있지만, 어릴 당시만 해도 TV와 라디오 외 그 흔한 신문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화가 나면 뉴스를 안 보면 될 일인데, 굳이 같은 시간에 뉴스를 틀어 놓고서 싫은 소리를 하는 아버지. 그리곤 어김없이 항상 버릇처럼 니오는 말, '세상이 말세야, 말세.' 어릴 땐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무섭게 느껴져 걱정도 많이 했었습니다. '세상이 망하면 어쩌지?' 그럼 어린 난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이 망해서 그냥 죽는 건가?' 다 커서 어른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이 망해서 죽을까 봐 진심으로 걱정했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쩌면 세상은 망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을 망하지 않은 세상에 난 여전히 무탈하게 성장하면서 살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노인들은 아직도 세상이 말세라고 주문처럼 말하고 있었으니까...
늘 세상은 말세였고 말세면 망해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은 말세라고 부르는 게 현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고 한 번도 말세가 아닌 때가 없었지만 겉보기에 세상은 평화롭습니다. 세상이 말세라는 말은 웃어넘길 수도 있는 말이지만, 어린 나이에 충격이 제법 심했던 스스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말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고 그 생각 깊숙이 자리 잡은 '세상이 말세'라는 말의 경험은 심각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을 꿈꾸기도 모자란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말세'라는 소릴 일삼아 들으며 내 의식 어딘가에 근원모를 패배주의적인 사고가 자리 잡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세상이 망할 거란 걱정을 하기보다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해야 할 어른들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위태롭고 모질었던 세상을 단순화시켜 표현한 것이 '세상이 말세'라는 말이었을 것이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일제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6.25 전쟁으로 월남한 가족의 생활이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험난하고도 처참했을 것입니다. 그런 세월을 이겨내며 바라보는 세상은 더더욱 불편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모든 종교의 종말론으로 귀결되는 말 습관 '말세'라는 표현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위해
우리는 모르는 영역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의견을 모두 가질 수 있고 가끔은 판단을 보류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새로운 해결 방법도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일 터.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극복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도록 그 시작을 막는 것이, 아직도 머릿속에 찌꺼기로 남아있는 학습된 패배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보의 부족이 판단을 좁힐 수도, 한정된 정보가 인생을 쉽게 결정짓게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지금 이 시점에 20대,30대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지금처럼 더 많은 정보와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더 많은 기회 앞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더 고민하고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도 싶지만, 더 많은 정보가 반드시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리란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말세'라는 말을 무심히 흘려버릴 수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언어로 대화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아이가 갖는 세상에 대한 경험의 방향은 크게 달라집니다.
세상의 마지막에서 볼 법한 적당한 타락과 징후들이 보이더라도 쉽게 위축되지 않고, 망할 때 망하더라도 마음껏 세상을 향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세상이 말세'라는 오래된 소문에 관하여 잠시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2.05.03 - [짧은 생각] 부자에 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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