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는 1920년대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입니다. 절망적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이 술주정꾼으로 전락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책임이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항변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던 술 권하는 사회가 최근엔 가스 라이팅 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듯합니다.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세상과 다른 판단을 하게 되면 편향적인 생각을 기준으로 나머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의견이 잘못되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유행어(?)처럼 사용하지만 그 위험성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작은 경험들을 되짚어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뉴스나 인터넷에 등장하는 경우는 대부분 종교 집단이나 남녀 간 연애사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간혹 언급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명명하지 않았을 뿐 가스 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출근 때마다 간혹 보게 되는 광경이 있습니다. 전철 '교통약자석'에 앉는 젊은이에 대한 곱지 않은 눈총이 아직 존재하고, 한쪽 다리 반 깁스를 한 '젊은 사람' 앞에 노인이 서서 큰 헛기침을 반복하고 있으면 그 젊은 사람은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불편한 주위의 눈총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싹수없는 놈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뒤늦게 일어서고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간간히 보는 풍경입니다. 다리 한쪽이 불편한 젊은이는 자리를 피해 주고도 나쁜 사람이 됩니다. 속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이미지에 갇힌 K장남 장녀들도 대표적인 가스 라이팅의 대상입니다.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똑똑해서 분명히 성공할 거야', '앞으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킬 거야' 라며 부모 자신들의 욕심을 대리 충족하려고 거는 기대들, '야무지고 똑똑한 살림 밑천이라서 시집(?) 가서도 친정을 돌봐줄 거'라는 추임새들. 이 모두 자식들의 판단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부모들의 습관적인 가스 라이팅입니다. 부모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고,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성공한 자식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꿈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반한 것일 때, 자식들은 '내가 이러면 부모님이 실망할 텐데'라며 꿈을 접게 됩니다.
한 집단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형식상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내기라도 하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한마디에 '내가 너무 예민한가?' 더 이상 의견을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새 정해진 룰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특이한 문화 중 하나가 '눈치'라고 합니다. 눈치가 발달한 사회, 눈치가 있어야 먹고사는 사회, 눈치가 없으면 손해를 보는 사회,... 건강하지 않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원칙이 그만큼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 '술'처럼 당연시하고 필요 이상 '관대'하게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감정적 억압들에 필요 이상 에너지를 쏟고 낭비하며 살아온 셈입니다.
'잘못'이라 아니라 '다른 것'일 뿐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 좋은 일이지만 방법이나 표현이 억압이나 강제성을 갖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고, 나를 위한 노력들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가져오고 강제성을 갖는다면, 더구나 그것이 지속적으로 나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애정을 가장한 폭력일 뿐입니다. 불심검문이 일상이던 군부독재 시절 사전 검열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과도한 검증과 감정의 억제, 생각의 제한을 하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해칩니다.
건강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서로 열어놓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 간에도 부모의 일방적인 훈육이 아닌 자녀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아직 어리고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이라도 그 나이엔 다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왜곡, 가스 라이팅으로 불안이 일상화하고 있는 즈음, '서로에 대한 존중'만이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시작점이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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