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집 몇 평야?
왜 우리 집은 친구들 집보다 작아?
유치원 무렵 아이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종일 놀고 들어와서 느닷없이 물어보던 질문에 잠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던 기억납니다.
-“너 전세 살지?”... 등기부등본 떼보고 왕따시키는 강남 초딩들 - 이란 뉴스를 접하고,
적어도 아이들은 서로 함께 어울려 놀 줄 알아야 하는데, 뉴스를 접하고 착잡해집니다. 질문이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더 무례하고도 심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무례하고도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초등학생이 아닌가요? 어린 초등학생이 저 정도라면 중, 고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 걸까요?
서울대 학폭 가해자의 승승장구, 스포츠에서 역대급 재능으로 기대를 받는 선수들, 좋은 학벌과 최고의 실력으로 집중 조명을 받는 각 분야의 신예들, 기대주들... 대략적인 사소한 잘못은 출중한 기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반성하고 있잖아...’ 이렇게 포장으로 덮어지거나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에게서 잊힐 시간... 그렇게 묻히길 원하고 그렇게 서로서로 용인하곤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한 개인의 일탈로 볼 수도 있지만, 사회 구조가 낳은 괴물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취업을 할 때만 해도 맞벌이 가정이 별로 없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엄마들은 집에서 지녀 교육을,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90년 말 경 IMF를 겪으며 모든 가정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 해체된 가족으로 - 살아야 하는 집들이 생겨났습니다. 엄마들은 갑자기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준비되지 못한 직장 생활의 시작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힘겨운 실험과 같았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 대응은 미숙했고 아이들을 직접 돌보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돈’으로 보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용돈을 넉넉히 주거나 원하는 물건을 사주거나, 실제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아이들이 가방에 만 원권 지폐를 아무렇게나 넣고 다닌 경우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여러 학원을 돌다 늦은 저녁, 부모들의 퇴근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린 그 사이 아이들에게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와 지켜야 할 것들 - 더불어 살아가며 발생하는 관계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 에 대해 가르칠 시기를 놓쳤을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한대 물질 제공으로 아쉬움과 어려움을 모른 채 자랐고 오히려 지원을 받지 못하면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지원은 당연한 것이어야 했으니까요. 학교에서도 대개가 외동인 귀한 자식들을 위한 부모들의 과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훈육하는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사이 문제가 생겨도 교사는 부모들을 서로 대면시켜 직접 해결하도록 했으니까요. 문제는 항상 생기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철학도, 역사도 점점 사라져 가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아이들은 올바른 판단이나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자라고 사회에 떨어졌습니다. 학원에서 만들어진 성적으로 대학과 취업의 기회를 거머쥔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취업을 해도 문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회식이 끝나면 엄마가 차로 자식을 데리러 가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살아온 시대적 배경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결국 지금의 이런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들이 일반화된 잘못은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몽땅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을 가르치지 않으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물질 제공만으로 부모 노릇을 했다고 믿고 싶었던 우리들의 잘못이 큽니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일면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니까요.
평균이나 평범함을 지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사실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이젠 여러 질곡을 지나온 터, 보다 사람답게 세상과 사람들 간의 진정한 관계 회복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잘못에 대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 손실이 너무도 큽니다. 잘못되기는 쉬워도 모든 것을 바로잡기엔 훨씬 더 큰 비용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변화는 결국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함께할 때만 세상을 변하게 합니다.
2023.07.11 - [짧은 생각] 괜찮지 않을 때 생각나는 말, ‘괜찮아’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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