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정점을 찍고 일상생활 회복을 시도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년이 넘도록 재택근무를 유지하던 방식에서 다시 정상 출근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의 해제로 출퇴근에서 오는 피로감과 함께 늦게까지 이어질 회식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많습니다. 실제 직장인 대상으로 일상 회복 관련 설문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회식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회식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기피하는 문화가 바로 회식입니다. 근무가 끝나고 각자의 개인 생활을 보내고 싶지만 퇴근 후에도 조직 내 사람들과 특정한 업무 이야기와 비위 맞추기, 원하지 않는 술과 음식을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은 환영받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왜 회식은 모두에게 이렇게 불편한가 잠시 생각해 봅니다.
군대 문화와 꼰대의 결합체
회사에서는 회식이란 장치를 통해 직원들 간의 소통과 화합을 유도하려 합니다. 업무 외적으로 서로 더 알아가고 친밀감을 쌓아 가려는 노력 중 하나입니다. '미생'에서 자주 보였던 장면들-신입이 들어왔다고, 팀의 성과가 좋아서 포상을 한다며 코가 비틀어지게 마시고 음식점 골목을 휘청거리며 걷던 직장인들의 삶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성년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들입니다.
술과 식사를 함께 하는 회식 자리, '간단하게 밥만 먹고 가~'로 시작된 회식의 권유이지만 간단히 뿌리치기엔 부담이 큽니다. 술자리를 빌어서 상사의 권위를 내세우고 반말과 충고를 서슴없이 해대는 광경은 익숙합니다. 회식에선 꼰대질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회식의 차수가 더해질수록 꼰대력은 급상승하고 모두가 쓰러져도 꼰대는 끝까지 남습니다. 학교 때 볼 수 있었던 워커에 술을 부어 나눠마시던 장면, 성인 남성이면 군대를 통해 꼭 배우는 자발적 충성과 조직을 위한 맹목에 가까운 희생, 건배식에서 무조건 잔을 돌려 마시던 광경들, 술자리이기에 용서(?)가 되는 당연한 성희롱 발언들, 차수를 변경하면서 접하는 음침한 음주 놀이 문화의 세계들, 세상은 2022년을 달리고 있지만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1960년대식 장면들이 아직도 현실에서 존재합니다.
기업들이 글로벌화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늘고 거꾸로 한국인이 해외에서 근무했던 경험들도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세상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근무하면서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도 역시 한국식 회식 문화입니다. 그들이 인식하는 한국의 회식문화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면 싸우고 다음날 함께 웃으며 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해외 언론에도 보도가 될 정도로 유명한, 가히 충격적인 요약입니다.
회식에서 전혀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조직 문화에 자발적으로 참석하지 않는 개인은 눈에 보이는 직장 내 따돌림을 겪고 견뎌야 합니다. 심하게는 사내 정치를 하지 못하는 탓으로 인사고과까지. 독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그 대가는 개인에게 너무나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맨숭맨숭한 정신력으로 버틸 다른 필살기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제한해서 먹거나 술을 아예 먹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 생활에서 갖는 회식의 의미란, 생지옥의 시간일 뿐입니다. 혼자만 멀쩡한 정신으로 버티며, 횡설수설하는 광경을 만화나 게임을 바라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눈으로 봐야 하는 시간입니다. 회식에서 편안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불편한 강요일 뿐, 가족 같은 분위기라지만 군대 서열에 따른 체계의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의 워라밸을 꿈꾸며
지금은 그래도 여러 조건들이 변해서 회식의 형태도 많이 다양하게 달라지고 차수도 1차로만 한정하기도 합니다. 나름의 배려와 강제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이 보입니다. 조직의 운영을 맡고 있는 장급들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신입 시절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시대는 변했고 집안에서 자식하고 한잔 하는 방법도 변해가는 즈음 조직의 회식 문화도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짜 돈으로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보다 집에서 편하게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은 요즘 세대가 요구하는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젊은 세대가 이기적이라고 비딱하게 보지 말고 삶의 중요 가치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가치의 변화는 오히려 앞 선 세대가 배워야 합니다. 조직의 호칭도 수평적 문화로 변화하고 있듯 회식 문화도 변해야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에 꼰대로 남지 않기 위해 새로운 방안 모색이 필요합니다.
라떼~, 그때는 그 방식이 맞았더라도 지금은 다른 방식이 필요할 때입니다. 술잔을 돌려 마시던 것이 바뀌는데도 한 세대가 걸린 듯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무척 빠른 속도로 바뀌고 적응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사회 규범이나 관계의 습성, 사람들의 인식들이 실제 행동으로 바뀌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속도도 더 더딥니다. 이젠, 일과 삶의 근본 목적과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2.04.05 - [짧은 생각] 나이를 먹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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