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多]

[짧은 생각] 퇴근 길에 만난 '고인 물'

나두매일 2022. 8. 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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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여전히 아직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지만 공식적인 거리두기 해제 후 정상 출퇴근을 합니다. 무더위를 핑계로 최소한의 거리 출근과 퇴근을 지향하던 터였지만 오랜만에 습도가 덜한 날을 골라 걷기 퇴근을 시도합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집으로 가는 여정이지만 그 안에 생활인들의 여러 모습을 보며 나도 그 안에 스며들어갑니다.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청계광장의 인공 폭포를 뒤로 하고 황학교까지 대략 1시간 반 정도의 '걷기 퇴근'이 나의 건강을 위한 시도였으나 그 끝 지점에 다다르며 문득 만나는 비릿함에 잠시 그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야심 찬 퇴근 걷기 시도




어린 시절 '청계천'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하천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허름한 중고 서점들이었습니다. 연배의 나이또 래들만 기억에 남은 그림이지만, 당시 학생 시절 용돈이 여의치 않던 때라 보고 싶은 책을 싸게 사기 위해서는 중고 서점을 뒤져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상태 좋은 책을 찾을 때 기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청계 고가 아래 자리한 서점들은 이용자도 많았지만 그만큼 희귀한 서적들도 많이 찾을 수 있는 나름의 보물창고였습니다. 지금이야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서점도 쉽게 방문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광화문의 대형 서점 말고는 딱히 신간을 접할 기회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보기 위해 서점을 찾고 서점에 서서(당시엔 앉아 볼 수 있는 곳이 없었고 눈치껏 봐야 했던 시절) 새 책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며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들락거리며 책 한 권을 완독 합니다. 읽은 책이 좋았으면 따로 메모했다가 일정 기간을 지나 청계 중고서점으로 가서 구하던 추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어른들이 주로 찾던 곳 황학동 골동품 점도 유명합니다. 지금의 황학동 시장이 그 명맥을 일부 유지하고 있는 모습니다.



청계천은 참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청계천에는 주로 어려운 사람들이 터를 이루고 살아 판자촌이 즐비했었고 천을 따라 형성된 상권과 생활오폐수가 도시개발에 걸림돌이 되면서 철거됩니다. 전태일 기념관을 지나 평화시장, 광장시장을 거쳐 내려갑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들을 지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비릿한 내음이 진하게 올라옵니다.


청계천은 자연하천으로 물난리에 취약하고 평시 오수로 관리가 필요해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개천 사업이 시행된 곳입니다. 천의 총길이는 대략 10.84㎞ 정도로 서울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서 왕십리 밖 근처에서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빠지게 됩니다.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와 함께 하천의 역사도 여러 개천 사업 후 복개를 거듭하며 현재 상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청계천은 본래 건천에 가까워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와 한강변 취수장의 물을 인공적 펌프질로 퍼올려 서울시 도심에 물을 흐르게 합니다. 그 위로 간혹 보이는 물새와 물고기들, 어마한 비용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 반가운 자연의 모습들입니다. 뒷모습이야 어떻든 해가 진 뒤 도심의 불빛 사이 모습들은 잠시나마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화려한 불빛 뒤 만나는 고인 물




실제로 청계천을 따라 걷자면 물가에 심은 나무와 풀들의 눅눅한 습기와 하천의 비릿한 냄새를 견뎌야 합니다. 결국 물이 한강으로 간다는 걸 알면서도 인공적으로 만든 천의 끝이 궁금해 지천 연결 지점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참고 견디면 어느 순간 물길의 작은 소용돌이를 만나게 됩니다. 앗!! 그런데 물의 흐름이 다르네?? 지류 끝 지점에 다다르면 나름의 소용돌이가... 순간 고인 물을 만나게 됩니다. 지천이 한강으로 나가기 전 마지막 인공 지점의 소용돌이가 고인 물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중랑천 합류지점 이전의 청계천 수 킬로미터는 실제 장마철 외는 녹조류 비린내 나는 모래 밭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하천에 매 시간마다 하천의 유지를 위해 일정한 양의 물을 계속 흘려보내야 합니다.



인공적인 하천의 유지를 위한 노력은 결국 막대한 비용이지만, 그 비용에도 불구하고 하천의 고인 물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치수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개천 사업이지만 화려한 불빛 뒤 고인 물의 냄새와 두터운 이끼를 걷어내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낭만적이지만 조금만 안쪽을 더듬어보면 퀴퀴한 냄새와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의 허위의식이 반영된 결과가 고인 물의 실체가 아닌가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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