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보기]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2024

나두매일 2025. 7. 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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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섬세한 영화를 봤습니다. 프랑스 특유의 (조금은 피곤한) 논리들을 볼 수 있었고 오랜만에 영화 음악에 귀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생을 견디는 힘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불안을 스스로 자초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살다가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때,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영화는 마치 <도망자>의 프랑스 버전 같습니다. 삶의 순간들을 낱낱이 해부해 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멋진 설경이 펼쳐진 프랑스의 한 마을, 고즈넉한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그 풍경 속에 한 가족의 남편이 추락사합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유력한 용의자가 됩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시각장애 아들과 반려견,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자살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일까요? 평범해 보이는 가장의 죽음이 가져온 의문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길고도 지난하게 펼쳐집니다.

 

 

 

 

'어떻게'에 대해 이해가 안 되면 '왜'를 생각해 봐야 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손에 잡힐 듯 말 듯하면서도 길어지고, 또 지저분해집니다. 평범하던 결혼 생활이 낱낱이 까발려질수록 사건의 진실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검사의 끊임없는 집요한 추궁과 변호인, 피고인, 증인 그리고 언론들의 수많은 추측들이 더해지면서 시나리오는 복잡해집니다.

 

 

 

 

삶에서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이 스스로 느끼는 극도의 초라함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런 초라함은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자주 아내를 향할까요? 결혼은 왜 함께 살며 끊임없이 상대에 대해 요구하고 잔혹해지는 걸까요? 남편과 아내는 왜 자꾸 비교되는 걸까요? 왜 한 사람은 늘 열등해지는 걸까요? 각기 다름의 타협점은 없는 것일까요? 세상의 수많은 결혼들은 모두, 안녕한가요?

 

 

한 인간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인간 추락에 대해 해부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재판정에서 드러나는 적나라한 인간성의 추함과 말 못 한 꾸질한 사정들을 보며, 때론 드러나지 않는 일상들이 상상 못 할 만큼 더 잔인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인가, 진실을 찾는 과정인가

 

삶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잔인해지고 추해지고 자꾸만 난도질당합니다. 결국, 그 궁극에 대한 질문을 끌어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들의 법정 진술이 인상적입니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아들, 고민 끝에 그간의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집요한 언어와 배우들의 집요한(집중이 아닌) 연기로 아슬아슬 외줄 타는 듯하던 한 가정의 일상이 벗겨집니다. 개개인의 삶을 낱낱이 발가벗겨 보면 우리 삶엔 과연 뭐가 남을까요?

 

 

 

 

법정에서 왜 그리 검사는 집요하게 사건을 헤집었을까요? 그 빈정거리는 얄미움, 잔인한 시나리오, 필요 이상의 집요함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진실을 증명하고 싶었을까요? 자살보다는 살인의 시나리오가 더 그럴싸하다며 호들갑 떠는 언론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실시간 체감하지 못하던 제도적인 해부 방식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째로 해부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끔씩 세상의 진실이 상대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유일한 죄는 실패한 남편의 옆에서 성공을 겪은 것이라는 산드라의  대사는 꽤 무겁게 다가옵니다. 결과적으로 부부의 삶이 바닥까지 드러나지만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던 아니던 한 사람의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혼, 아내와 남편의 부부 관계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서로 얽히고설킨 감정에 집중되었다면 이 영화는 차갑고 냉랭한 각각의 삶이 부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서로 만날 수 없는 극단의 차이가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그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자신의 집에서 떨어진 남자, 세상의 중심에서 스스로 초라해져 인생의 끝 자락으로 떨어져 버린 남자, 세상이 구해줄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영화의 큰 틀 - 법정 진실 공방을 게임인양 '흥미'를 팔 뿐 진실을 말해주는 시나리오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뻔뻔한 언론과 세상 사람들의 인식 - 은 마치, 우리들이 가장 믿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그럴싸한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현실을 보는 듯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 <추락의 해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우린 어쩌면 선택적으로 끼워 맞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안고 끝까지 집중했던 영화는 우리의 삶 어느 지점에서 겉으로 드러내기 싫었던 삶이 발가벗겨지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남은 사람들의 감정과 비밀을 - 끝까지 드러내고 싶지 않던 삶의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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