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이라는 서로 상반된 주제, 그 무게는 한없이 무겁고도 또한 매번 간절합니다.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사라예보에서 빛나는 자신들의 젊은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 고통, 사랑, 우정, 생명, 그리고 추억에 관한 아픈 이야기들이 영화 <투와이스 본 Twice Born>을 통해 그려집니다. 사라예보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오랜 친구 고히코가 전쟁기념행사에 젬마를 초대합니다. 아들 피에트로와 함께 사라예보로 간 젬마는 고히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일을 추억합니다.
1984년, 젬마(페넬로페 크루즈)는 논문 준비를 위해 사라예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이드 고히코의 소개로 다양한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던 중 미국에서 온 사진작가 디에고를 만납니다. 내일이면 브라질로 떠날 예정이던 디에고(에밀 허쉬)는 운명처럼 첫눈에 젬마에게 반합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람
디에고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온 젬마는 오랜 연인과 결혼하지만 결혼생활은 금방 끝이 납니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디에고는 젬마의 이혼 소식을 듣고, 로마에 집과 직업을 구한 후 젬마에게 프러포즈를 합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됐지만 젬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잇따른 유산으로 젬마는 점점 지쳐가고 아이를 유독 좋아하는 디에고가 어쩌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젬마와 함께할 다른 방법을 찾는 디에고, 하지만 자꾸 도망가려는 젬마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상태의 무력감을 느낍니다. 의사와 입양기관의 도움을 기대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두 사람은 절망에 빠집니다.
디에고의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젬마는 아스카의 몸을 빌리기로 하고 운명의 날을 맞이 하지만 내전이 본격화되는 사라예보를 도망치듯 떠납니다. 2012년, 가정을 꾸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젬마는 고히코의 연락을 받고 디에고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 아들 피에트로와 함께 사라예보를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젬마는 충격적인 진실을 만납니다.
이제 세상은 끝났어 우리도 말이야
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사라예보로 돌아가 활기를 되찾아 보지만 그뿐. " 나 불임이래." 고히코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젬마. 아이에 관한 문제는 한순간도 젬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라예보를 떠나 로마로 돌아온 뒤 디에고는 사진작가로서 자신이 찍는 광고 사진에 염증을 느낍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사라예보의 참혹한 소식들, 집에서도 사라예보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돌려보며 덧없이 빈 카메라의 셔터를 누릅니다. 디에고는 작가로서 자신의 현실에 불일치하는 마음과 허무함, 공허함을 드러냅니다.
결국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디에고는 어느 날 불쑥 오토바이를 타고 떠납니다. 디에고와 함께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라예보에 도착한 젬마가 다시 만난 디에고는 어딘지 모르게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혼자 조용히 음식을 챙겨 폭격 속에 위험지대를 지나 달려가는 디에고. 디에고를 쫓아가던 젬마는 임신한 아스카를 대피시키는 디에고를 발견합니다. 디에고는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요?
자신의 사진만을 남겨두고 사라진 디에고, 젬마를 끝까지 바라보는 고히코 모두 자신들의 아픈 시대를 겪어내는 과정이 너무 아름답고 슬픈 영화입니다. 섬세한 영상의 색감이 무척 아름다웠고 디에고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어떻게 인간을 정신적 극한으로 몰고 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무겁게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마음 따듯한 사라예보 친구들을 통해 인간의 사랑이 가득한 영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에밀 허쉬는 <인투더 와일드 Into the Wild>를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배우입니다. <인투더 와일드 Into the Wild>에서 에밀허쉬의 모습이 잔잔한 흑백에 가까웠다면 <투와이스 본>의 에밀 허쉬는 여러 가지 색깔을 골고루 머금고 있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디에고가 사진작가로서 전쟁을 겪는 괴로움, 젬마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아스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미묘하고도 섬세한 연기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젬마는 첫 번째 사라예보 여행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두 번째 사라예보 여행으로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23.08.11 - 나도 모르는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언노운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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