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끔 지난 시간을 아쉬워할 즈음이면, 잠시라도 시간이 멈추거나 거꾸로 흘러가길 바랄 때가 있습니다. 흔히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그때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런 생각들을 해 보곤 합니다. 꿈에서 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그런 발칙한 상상을 실현해 준 영화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입니다. 이 영화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신선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무슈 가토 (일라이어스 코티스)는 군대에서 전사한 아들을 기억하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듭니다.
이 시계는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우리의 자식들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돌아와서 농사도 하고.. 일도 하며 자식까지 낳고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거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난 지금 이 순간의 우리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기형적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 토마스 버튼은 벤자민을 괴물로 여겨 요양 시설에 버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나이를 거꾸로 먹고 점점 어려지는 운명의 벤자민은 양모 퀴니의 사랑 가득한 돌봄으로 조금씩 성장하며 나름의 인생을 삽니다. 어릴 때 운명처럼 첫사랑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를 만나지만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계속 반복됩니다. 하지만, 데이지가 교통사고로 발레를 못하게 되자 벤자민은 데이지를 다시 만나 함께 여행을 하고 집을 마련해 정착합니다. 데이지는 점점 어른이 되고 벤자민은 점점 어려져 40대가 되어서야 삶의 비슷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지만 베자민이 데이지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하던 소중한 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잠깐만... 난 지금 이 순간의 우리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데이지는 자신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불안하지만 벤자민의 위로로 삶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살아야 하는 벤자민은 데이지와 딸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모두 딸과 데이지에게 남기고 떠납니다. 벤자민은 오랜 시간 방황하며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배우며,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내고 또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도 겪습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것은 없다
폭풍 전야의 병원에 누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앞에 두고 데이지는 딸 캐롤라인(줄리아 오몬드)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데이지는 딸이 읽어주는 일기장을 들으며, 벤자민과 함께했던 시간과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물 흘립니다. 몰랐던 발레리나로서 엄마의 모습과 옛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 앞으로 온 엽서 뭉치를 발견한 딸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던 아버지를 그렇게 만납니다. 벤자민은 데이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캐롤라인에게도 매번 엽서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편지에서는 가족을 향한 벤자민의 간절한 마음들 - 사랑과 그리움, 딸을 위한 인생 조언, 아버지로서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쉬움들이 가득 느껴집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단다.
너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될 수도 있어.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지금처럼 살아도 좋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최선과 최악 중 최선의 선택을 하렴.
너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며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하렴.
오랜 세월이 지나고 데이지가 다시 만난 벤자민은 치매를 앓고 있는 - 오래 산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 - 어린아이였습니다. 데이지는 벤자민이 5살이 되자 그를 돌보며 함께 지냅니다.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간 벤자민은 할머니가 된 데이지의 품에서 잠을 자듯 눈을 감습니다.
벤자민의 이야기를 끝낸 데이지는 캐롤라인이 보는 앞에서 평온히 눈을 감습니다. 캐롤라인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사색에 잠기고, 벤자민은 자신의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을 독백과 함께 회상하면서 거꾸로 가는 시계가 태풍으로 비바람에 잠기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만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은 우리들이 한 번쯤 꿈꾸는 바람일 텐데... 꼭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벤자민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던 할머니의 말처럼,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야 그들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슬픔은 너무도 큰 고통일 것 같습니다. 서로 웃고 울고 싸우더라도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시간에서 살기보다는 같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영원한 것도, 더욱이 행복에 정답은 없지만 벤자민의 말처럼 삶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서로의 관계 속에서 함께 나누던 추억 그 존재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3.03.17 - 허니문은 아버지와 함께 LIK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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