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자주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The rush of battle is a potent and often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영화는 강렬한 문구와 함께 시작합니다. 전쟁과 중독. 두 가지 모두 치명적이고 위험합니다. 이라크전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팀의 활동과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다른 전쟁 영화와는 좀 다른 의미에 집중해서 봅니다. 그동안 전쟁 영화를 보며 막연히 느끼던 불편함이 이 영화 한 편으로 ‘중독성‘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라크전의 작전 도중 폭발 사고로 분대장을 잃은 팀에 새로운 분대장 제임스(제레미 레너)가 오지만 전쟁 중이라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더해 그의 돌출 행동이 불안감을 더하면서 팀원들과 갈등을 겪습니다. 제대까지 D-38일 남은 상황, 서로 도와가며 폭발물을 제거해야 하지만 폭탄보다 더 위험한 제임스의 독단적 행동으로 팀원들은 전쟁의 위험 그 이상으로 큰 위협을 느낍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세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제임스는 폭발물 해체를 하면서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에 사로잡힙니다. 한편, 임무를 마치고 난 후 살아남았을 때의 안도감과 희열로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혼자만의 시간에 간간히 정서적으로 거칠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임무 중엔 팀원들의 협조를 거부한 채 혼자 단독 행동을 합니다. 임무 중 위험하니 철수하자는 샌본 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교신을 끊어버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오로지 무거운 임무 중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과 압박감, 그것만을 위해 폭탄 해체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영화의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촘촘한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여느 전쟁 영화에서 보던 대규모 전투나 폭발음의 연속성도 없이 오히려 고요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조용히 숨어 있다가 그 고요함의 끝에서 강하게 터지는 폭발의 장면들이 더욱 대조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미국의 전쟁 영화에서 다루는 파병의 의미가 어느 정도 예쁘게 포장된 측면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냥 그대로 보는 사람이 판단하도록 노출만 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영화는 폭발물 처리반과 실제 함께 한 것처럼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연출이 되었고 순간순간 숨 막히는 장면들이 연속됩니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처럼 큰 전투나 화려한 액션신이 있지는 않지만 전쟁 속에 드러나는 상상하지 못한 섬세한 인간 심리를 리얼함 그 자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폭탄 해체를 하는 그 순간마다 느껴지는 극도의 긴장감과 인간적인 압박감이 숨죽이며 보도록 몰입을 극대화합니다. 폭발물 제거와 연결된 제임스의 심리적인 영향이 미세한 표정 변화에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나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무섭니? 나도 무섭단다
킬존에서 귀환하기까지 38일을 견디고 벗어났지만,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크리스(브래들리 쿠퍼)도 일상생활에 정상적으로 복귀하지 못해 재차 파병을 떠났던 것처럼 제임스도 비슷한 전쟁 후유증을 겪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에서 무너지는 인간들의 한없이 나약하고 또 잔인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공포와 격렬함, 그에 따르는 후유증을 마약에 비유한 첫 장면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됩니다.
제임스는 복무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갓난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독백하듯 고백하고 다시 전쟁터로 파병을 떠납니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곳이 결국 전쟁터였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라크엔 더 많은 폭파 요원이 필요해
나이가 들면 네가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단다
아마도 네가 좋아하는 이 상자는
단지 스프링과 인형 뿐이라는 걸 느끼게 될 거야
폭발물 제거라는 긴장된 상황을 피하고 싶어도 중독되어 버려 다시 전쟁터로 나가는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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