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마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요일 대낮에 TV앞에서 '구미호'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왜 그걸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많은 외화물 속에 유일하게 한국 드라마로 충격적이었던 작품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낮에 보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만큼 긴장했었습니다. 긴 머리를 풀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이다가 괴물처럼 변신하는 모습들은 가히 충격적이고 무서웠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뿔 달린 도깨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왜 그랬는지 코미디물 조차도 죽음을 다룬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까만 한복을 입고 갓을 쓴 기괴하고 창백했던 저승사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었습니다. 사람이 나고 살다 죽는 공통된 과정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한 삶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때,
성공한 대기업 회장 윌리암 패리쉬(안소니 홉킨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후 큰 딸 앨리슨 패리쉬(마샤 게이 하든)와 작은 딸 수잔 패리쉬(클레어 폴라니)와 살고 있습니다. 앨리슨의 남편 퀸스(제프리 탬버)와 수잔의 남자 친구 드류(제이크 웨버) 도 회사에서 각각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큰딸 앨리슨이 아빠의 성대한 생일 파티 준비에 분주한 동안 윌리암은 그의 오른팔이자 둘째 딸 수잔의 애인인 드류를 시켜 네트워크 회사 매각을 추진하게 됩니다.
윌리암 패리쉬는 자신의 65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어느 날 밤 누군가의 '그래'하는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이젠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노화와 병증에 시달리던 윌리암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주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누군가에게서 'YES'라는 대답을 들은 것입니다.
수잔은 직장 근처 카페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남자는 커피를 사고,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수잔도 호감을 느낍니다. 다정하고 유머까지 갖춘 낯선 남자와의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지만 늘 그렇듯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집니다. 가벼운 만남처럼 서로 이름조차 묻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길로 가던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던 모습은 무척 아련합니다. 하필, 아쉬움과 망설임으로 돌아서 가던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윌리암은 성대한 생일을 준비하는 자식들과 달리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착잡해합니다. 죽음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듣고 나서 더더욱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날 저녁,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윌리암은 그가 바로 자신에게 대답을 준 '저승사자'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질 준비도 되지 못한 채, 사업체를 정리도 못한 채 떠날 수 없었던 윌리암은 저승사자와 딜을 합니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대신 저승사자에게 인간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합니다.
떠나보내는 게 쉽지 않군 안 그런가? 그게 인생이야
둘만의 계약으로 윌리암은 저승사자를 가족과 회사에 조 블랙(브래드 피트)으로 소개합니다. 갑자기 등장한 조를 대하는 가족들, 회사 직원들 - 잠깐 카페에서 만났던 수잔을 제외하고 탐탁지 않습니다. 조는 조금씩 인간 세상에 적응합니다. 때로 엉뚱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조의 행동들은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무작정 꽃다발을 들고 수잔을 찾아가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멀쩡하게 차려입고 피넛버터를 맛깔나게 먹는 모습은 미소가 지어집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저승사자 조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 볼 수 없는 죽음이란 부정적인 것을 보다 친근한(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으로 달리 바라보게 됩니다.
회사의 매각을 위한 드류의 전략과 조의 억울한 누명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하지만,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윌리암의 마음과 카페에서 만난 남자와 헤어졌듯 또다시 떠나야 하는 조를 바라보는 수잔의 마음은 모두 복잡해집니다. 더구나 조와 수잔의 사랑을 목격한 아버지로서 윌리암은 수잔까지 데려가려는 조에 분노합니다. 윌리암의 생일 파티에서 수잔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된 조는 윌리암과 함께 둘만 떠나기로 합니다. 카페에서 만난 남자가 모든 것에 우선해서 사랑을 택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항상 수잔을 사랑하기로 한 조 역시 수잔 앞에 카페 남자를 두고 다시 떠납니다. 수잔의 복잡한 표정은 너무 안쓰러웠지만 수잔은 그가 조였든 카페 남자였든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 그 자체에 감사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가족과 사랑과 죽음의 어울림이 얼마나 오묘하고도 복잡한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영화, 살면서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궁금해집니다.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한 윌리암의 말과 만족스럽게 미소 짓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여러분 저처럼 행복하게 사세요.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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